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10.07.04 10: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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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빚

 

  사람이 살다 보면 불가피하게 빚을 지는 수가 있다. 성경에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다(롬 13:8). 사랑의 빚은 물질적인 빚과 달리 행복한 빚임에 틀림이 없다. 부모의 사랑과 호의로 자라난 자식은 평생 동안 빚을 지고 있지만 다 갚지 못하고 살아간다. 가족들 외에도 선후배간에 또는 사제지간에 연결된 좋은 관계가 항상 마음에 빚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사랑의 빚도 빚이기 때문에 받은 것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돌려주어야 마음이 편안하고 그렇게 못할 경우에는 항상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한다. 마음의 빚은 내가 받은 혜택뿐 아니다.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거나 마음고생을 하게 하였다면 그것도 마음에 빚으로 남게 된다. 같은 형제끼리도 공부 잘 하고 모범생인 언니와 그 그늘에 가려져 열등감을 키워온 동생이 있다고 하자. 언니는 동생을 대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런 것이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된다. 훗날 동생이 언니보다 훨씬 잘나가고 성공을 하게 되면 그제야 마음의 빚을 내려놓았다고 말을 하게 된다. 마음의 빚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적인 교감으로 해소시킬 수 있다. 오래도록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빚이라 할지라도 한번 만나서 진솔한 대화를 하며 미안하다는 정중한 말 한마디로 모든 빚을 털고 나갈 수가 있다.

 

  나는 작년 이맘때 힘든 과정을 하나 겪었다. 79년 7월 1일 교회 버스가 기차와 충돌하여 사고 나던 날 넘어지는 버스에 깔려 죽은 젊은이가 있었다. 30대 초반인 그 남자는 아내와 다섯 살, 세 살 되는 아들과 딸을 남겨두고 갔다. 당시로서는 교회가 최선을 다해 보상도 해 주고 합의를 보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나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다. 수소문을 해서 어렵사리 그 부인에게 연락이 닿았다. 약속된 장소에 나갔더니 예순 살이 된 초로의 할머니가 서른세 살 된 딸과 함께 나왔다.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지난 30년 힘들게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한번 만나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긴 세월 아팠던 흔적이 지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눈물을 흘리며 털어놓는 하소연을 듣는 동안 나에게는 마음을 누르던 빚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