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10.07.18 11: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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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


 
  『간서치전(看書痴傳)』이라는 책이 있다. 일 년 열두 달 책 속에 파묻혀 소리내지 않고 책만 읽는 바보 이야기다. 최근에 안소영 작가가 쓴 ‘책만 보는 바보’라는 글속에 나오는 주인공 이덕무의 이야기다. 그는 평생 동안 손에서 책을 내려놓은 일이 없는 사람이지만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후기, 1790년대에 이덕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양반집 아들이지만 적자가 아닌 반쪽 양반이었다. 서자로 태어나 출세를 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매일같이 책만 읽었을 뿐 거기서 배운 지식을 써먹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책만 보는 바보’라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이덕무와 같은 간서치에 속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모두 다 비슷한 처지의 신분으로서 태어난 시대와 차별적인 관행에 울분을 터뜨리며 책 속에 파묻혀 사는 것을 일로 삼았다. 그렇지만 자신의 팔자 탓을 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속에는 여유와 풍류를 잃지 않았다. 일정한 직업이 없고 장사나 사업의 수완도 없는 사람들이니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서(漢書)를 이불 삼고, 논어를 병풍 삼아 허기지고 배고픔의 일상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하였다.

 

  그래도 따른 식구들의 고생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던가 보다. 오래도록 굶주려서 표정이 없는 아이들의 퀭한 눈을 보면서 끝내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그토록 귀중하게 여기던 책,「맹자」일곱 권을 내다 주고 양식을 바꿔왔다. 섭섭하고 허탈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친구 유득공을 찾아갔다. 대뜸 “맹자에게 밥을 얻어먹었다.”고 했다. 그 말의 뜻을 알아챈 유득공은 “그래여? 그럼 좌씨에게 술을 한잔 얻어먹어야겠네.” 하고는 서슴없이 「좌씨춘추(左氏春秋)」를 팔아 술을 샀다. 호구지책을 위해 책을 팔아버린 친구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려고 자기도 선뜻 같은 행동을 감행하는 우정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서출로 태어난 신분의 한계와 가난과 굶주림의 현실적 문제에 부대끼면서도 서로를 헤아리고 의지하는 선인들의 따뜻한 인간미를 생각하게 한다.

 

* 이덕무, 유득공은 조선 후기 실학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