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10.08.08 1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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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리고 가는 버릇 
 
 

  ‘거러지 김칫국 흘리듯 한다.’는 말은 하는 일이 깔끔하지 못하고 허술하거나 출중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제 앞가림을 제대로 못하고 항상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거나 부담을 주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나는 어릴 때 엄격한 부모님들 밑에서 가정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자기의 역할이나 책임문제에 허술한 것은 용납이 안 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약속을 하고도 안 지키는 것이나, 자기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도 아무렇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를 보면 속으로 분통이 터진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다른 사람에게 예절 있게 행동하는 것은 그 사람의 기본적인 소양이며 품격을 말해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조금도 틈새를 보이지 않을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처럼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것을 나쁘다고 할 것은 없지만 문제는 자기의 눈높이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모두가 다 기준 미달이 되고 상종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이다 보니 모두 다 최선이나 최고라는 상한선을 그어놓고 여간한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약간의 허점도 용납이 안 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지난번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어느 해설자가 ‘축구는 실수의 게임’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출전하는 팀마다 뛰어난 개인기에다 화려한 공격과 완벽한 수비의 전력을 구축하고 있어서 어느 한쪽도 실수가 없으면 0:0으로 승부가 날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결국 사령탑에서 상대의 허점을 찾아내고 그곳을 공략하는 작전과 전술로 승부를 가른다고도 했다.

 

  개인의 도덕성이나 공동체의 질서의식이 건강한 사회의 기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느 시대, 어떤 곳에서도 최선과 최고의 가치를 완벽하게 구비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준 미달로 처지거나 흘리고 가는 경우가 더 많을 때도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 자기를 허물고 다른 사람이 흘려놓은 것을 끌어 담는 아량을 보일 수 있다면 이것이 조화된 사회의 건강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