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정신
1961년 ‘시급한 민생고의 해결’을 혁명공약으로 내걸고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장군은 집권 후에도 정치적인 안정 못지않게 경제건설에 몰두했다. ‘보릿고개’와 ‘초근목피(草根木皮)’와 같은 말들은 그 시대에 배고픔을 상징하는 용어이지만 실의에 빠진 국민들의 절망적인 현실이 묻어나는 말이기도 하다. 그때는 식량의 자급자족이 급선무였고 어떻게 라도 국민의 의식을 깨우쳐서 긍정적인 사고와 자활정신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골몰하기도 했다. 그가 최고회의 의장으로 있을 때 경기도 광주군에 있는 가나안 농군학교로 김용기 장로를 찾아갔던 일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대통령은 우리나라보다 2년 늦게 독립을 했고 또 지정학적으로 훨씬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 악조건들을 이기고 자립의 의지를 키워 나가는지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65년인가 정부에서 파견한 시찰단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때가 있었다. 시찰단 일행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단생활을 하고 있는 키부츠 농장을 둘러보고 거기서 협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판매하는 그들의 공동체 의식과 개척자 정신에 큰 도전을 받았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의 불모지인데도 어떻게 농사를 주산업으로 발달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또한 사방으로 적성국가에 둘러싸여 생존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남녀노소 온 국민이 튼튼한 안보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찰단을 수행했던 이종원 기자는 그가 쓴 <잘 살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글에서 그 이유를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굴의 투지와 그들의 몸에 배어있는 개척자 정신을 꼽았다. 시찰단이 키부츠 안에 있는 유치원을 방문했는데 기자가 거기 놀고 있는 아이들 중 하나를 붙잡고 “장차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첫말에 ‘개척자’라고 대답했다. 다른 아이에게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우리나라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어린들이라면 태반은 대통령이라 했을 것이고 아니면 대학총장이나 사장 같은 최고의 지위를 희망했을 것이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개척자 정신이야 말로 오늘의 젊은이들이 간직해야 될 시대정신이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