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최근 몇 년 동안 서울에 살고 있는 고향 친구들과 모임을 자주 가진다. 강남에 있는 어느 음식점에서 고향 냄새가 물씬 나는 생선 미역국과 남해안의 자연산 회를 먹으면서 어린 시절의 향수에 젖어지곤 한다. 나는 어릴 때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 또래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남의 집 울타리에 불을 질렀던 일, 여러 명이 달려들어 고구마 밭을 뒤지다가 주인에게 붙잡혀 혼쭐났던 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을 기억해 내고 마치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실감나게 웃고 즐긴다. 그렇지만 우리 아버지는 나를 굉장히 똑똑하고 장래성이 있는 아이로 보았던 것 같다. 친척 가운데 한분이 일찍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인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나를 그 밑에 보내면 앞으로 한 가닥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 기대와 상관없이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교회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 부자간에 전쟁은 그치지 않았고 그런 가운데서 교회생활을 착실히 하였고 결국 목사가 되었다.
전쟁시절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거제도는 생활 문화가 매우 열악한 지역이었지만 그곳에서 시골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가운데 성실하게 공부하고 노력하여 성공한 사람이 많이 있다. 정계, 관계, 학계, 재계 또는 예술과 문화 분야에까지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명성을 떨친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60대에서 70대로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되었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정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관록이나 업적보다는 지금의 자기모습을 반추하게 된다. 젊은 시절 왕성하게 활동하며 성공적인 업적을 이루었던 사람도 그 화려했던 자취가 한 순간에 풀의 꽃과 같이 사라져간 것을 보면서 많이들 허탈해 한다. 나 역시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무엇에다 삶의 열정을 불태웠을까?
언젠가 나를 찾아온 어느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그 사람은 거제 출신 가운데 가장 성공한 인물로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붙잡았던 부와 명예도 지금 보니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고 실토했다. 그는 또 “예수를 붙잡고 살아온 너야 말로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일세.”라고 의미 있는 말을 남기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