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雪)을 보면서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온 세상이 하얀빛 일색이다. 밤새 10cm가 넘는 눈이 내려 밤나무와 잣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수양관의 설경은 그야말로 겨울 경치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첫눈과 관련하여 한 가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부터 37년 전 경남 함안 지방에 있는 어느 시골교회에 시무할 때의 일이다. 장년교인 약40명쯤 되는 가족 같은 교회인데 그중에도 특별한 사람이 한명 있었다. 40세 쯤 되는 이 남자는 모태 신자로 유아세례를 받았고 마산에 있는 미션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똑똑한 사람이었다. 아내와 자녀들이 모두 교회에 나오는데도 심심찮게 술을 먹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방해하며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트집을 잡는 이유는 자기에게 집사직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숨어서 술을 먹는 사람은 집사직을 주고 자기처럼 드러나게 먹는 사람에게만 안 준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이유를 붙여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괴롭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임신 중이던 나의 아내가 실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 사람이지만 동네에서는 모범적인 농사꾼으로 비닐하우스에 고등 소채를 재배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는 농촌 운동의 선구자였다. 11월 하순경 2천여 평 되는 하우스 농장 안에는 오이와 멜론, 참외 등이 탐스럽게 자란 열매들로 첫 출하를 기다릴 때였는데, 기상대의 예보도 없이 갑자기 폭설이 내렸다. 밤새도록 엄청난 양의 눈이 비닐하우스를 깔아 뭉개버렸고 그 넓은 하우스 농장은 삽시간에 눈폭탄을 맞아 폐허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교회를 괴롭히던 그 사람과 가족들은 그날 이후 그 마을에서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수양관 옥상에서 눈덮힌 아랫마을의 풍경을 감상하던 중 도로 위를 주행하는 차량들의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침 뉴스에는 간밤의 폭설로 빙판길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소식도 전해왔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는 첫눈이 주홍 같은 죄를 흰 눈처럼 깨끗이 씻어주는 축복의 상징인가 하면 범죄한 인간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징벌의 상징도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