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10.12.26 10: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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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하는 뒷모습

 

 
  지난 가을 고신대 신학대학원 30회 동기생들과 1박2일간의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지 35년이 되었는데, 졸업당시 36명의 동기생 중 이미 6명은 소천했고, 5-6명은 해외에 거주가거나 연락이 안 되며, 10명은 정년이 되어서 목회를 은퇴하였다. 아직 현직에 남아있는 사람도 본인이나 사모님이 건강을 잃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고, 또는 부인과 사별한 채 혼자 지내는 친구도 있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던 중 불현듯 세월이 더 가기 전에 이 사람들을 한번 초청해서 위로를 해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산 근처 온천이 있는 호텔로 초청하였더니 부부 동반으로 30여명이 모여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와 젊은 시절 목회현장에서 겪은 사연들로 회포를 풀며 기억에 남을 시간을 가졌다. 그때 나는 많은 비용을 부담했지만 그렇게라도 이들을 섬길 수 있은 것이 큰 보람으로 여겨졌다.

 

  목사님 한분이 공교롭게도 동기들의 모임과 때를 맞춰 정년 은퇴식을 가졌는데 내가 축사를 하게 되었다. 한평생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다가 목회 사역을 마치는 뜻있는 자리여서 그런지 본교인들과 친척들 또 많은 목사와 장로님들이 와서 축하를 해 주었다. 순서에 따라 내가 축사를 하려고 섰는데 선뜻 한 가지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난번 우리 노회의 목사 안수식 때 노회장이 설교를 시작하면서 앞줄에 앉아있는 목사 후보자들에게 가슴에 꽃을 내려놓으라고 하더니 대뜸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고 했다. 당사자들과 축하 온 가족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역했다. 나는 친구의 은퇴식에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삼가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목사로 안수받을 때 이미 죽음의 길로 들어섰고 그 살얼음판 같은 현장에서 하루도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용케도 견디어 나온 것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수식어나 훈장같은 것이 따르지 않더라도 자기의 소임에 충실하다가 조용히 내려가는 뒷모습이 너무나 존경스럽고 아름답게 여겨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