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11.07.10 14:34:15
2042

 

사람을 얻는다는 것

 
지난 달,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종태 장로와 나 사이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그는 내가 창원 성주교회 시무하는 동안 83년에 집사로, 85년에 장로로 안수를 받은 사람이다. 그를 포함해서 5명이 집사로 피택되어 1년 가까이 교육을 받던 중 장립식 날짜가 가까워질 무렵 이유 없이 시험에 들었다. 맡은 직책들을 내려놓고 주일 예배만 겨우 참석하면서 임직도 거부하겠다고 했다. 동료들이 권면하고 당회원들이 불러서 물어봐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임직식 날짜를 2주일 정도 남겨놓고 당회에서는 직분을 줄 수 없는 것으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토요일 저녁에 예고도 없이 그의 집을 찾아갔다. 미리 전화를 하지 않고 쳐들어갔더니 두 내외가 깜짝 놀라 안절부절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직분을 거부하며 목사에게 도전하는 이유가 뭔지 말하라고 다그쳤다. 순종을 거부하는 그의 행위가 하나님께 불신앙적이고 교회를 혼란하게 하는 것임을 주지시키면서 설득도 해 보았으나 막무가내였다. 그냥 입을 다물고 있다가 한마디씩 불평만 늘어놓곤 했다. 밤을 꼬박 새우며 버티는데 새벽 4시가 되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곧 교인들이 새벽기도 나올 시간이 되어 나는 그 길로 교회에 가서 기도회를 인도해야 되었다. 나는 오늘 당회를 열어서 공식적으로 처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서 5층까지 걸어 내려오는데 두 부부가 말없이 따라서 내려왔다. 키를 꺼내 승용차 문을 여는데 그제야 나의 손을 잡으면서 “목사님! 죄송합니다. 오늘이 주일인데도 밤을 새우며 끝까지 붙잡아 주셨는데, 목사님 마음 아프게 한 것 참으로 죄송합니다.”고 했다. 나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나의 손을 놓지 않고 “저가 잘못했습니다. 용서 해 주십시오. 모든 것 순종하겠습니다.”하고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 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으나 그때 그 긴장과 감동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 목회인생에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가로막는 불신과 오해의 장벽은 진정성이라는 병기라야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