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11.11.27 11:10:17
2953


어머니의 등창


      내가 전도사로서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부산에 사촌 형님이 살고 계셨는데 고향에서 어머니가 몸이 아파 올라오셨다고 연락을 해왔다. 형님 댁에 달려갔더니 어머니가 꼼짝 못하고 엎드려 계시는데 등에는 대접을 엎어 놓은 것처럼 커다란 등창이 나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당장이라도 병원 응급실로 모시고가서 수술을 하자고 했더니 형님은 생각이 달랐다. 형님은 오래도록 교편생활을 하는 분인데 학부형 중에 잘 아는 의사가 있어서 어머니가 도착하자마자 의사와 먼저 의논을 했던 것이다. 그 의사의 말이 환자의 상태로 볼 때 몸은 지쳐서 허약해있고 종기는 악화되어 터질듯이 부어있는데 수술을 하다가 예상 못 한 부작용이 일어나게 되면 치명적인 상황에 이를 수 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은 진통제를 쓰면서 겉에다 약을 발라 시간을 가지고 삭여내는 방법으로 치료를 해야 된다고 했다. 가족들은 그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는 당장 환자가 죽을 판인데 지체 없이 수술을 해서 빨리 고쳐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것이냐고 성화가 대단하셨다. 외과적 처방으로 당장 수술을 했더라면 일주일이내에 나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매일같이 약을 바꿔가며 다 녹아서 삭아질 때까지 20일은 걸린 것 같았다.

     나는 그때 그 의사의 치료 방법을 보고 나의 목회 생활에 적용해 왔다. 단칼에 수술로 환부를 도려내고 치료하면 훨씬 빠른 시간에 속 시원히 끝낼 수는 있겠는데 자칫 치명적인 부작용을 안아야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내과적 요법으로 오랜 시간 아픔이 연장되는 인내를 감수하면서 그 길을 선호하려고 애를 써왔다. 나는 의사가 아니라서 그분들의 심리를 정확하게는 모른다. 질병의 원인과 내용 그리고 환자의 상태를 봐가면서 치료의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위험의 요소를 각오하고라도 한 번의 고통으로 속전속결로 끝내줄 수도 있고, 아니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험의 요소를 피해가면서 안전하게 치료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에게 몸을 맡긴 이상 모든 판단과 결정은 의사의 권한임을 인정해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