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初心)을 지키는 자세
1972년 내가 신학대학을 다닐 때 울산 지방에서 전도사로 시무한 적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학교와 먼 지방에서 사역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했으나 거기서는 부산까지 통근 열차로 2시간 거리가 되어 집에서 통학을 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시부터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5시 40분쯤 기차가 신호음을 내면서 역에 들어오면 그냥 달려가 차를 탈 수 있었다.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잠도 많은 때였지만, 콩나물 시루 같은 통근차에서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티셔츠와 잠바차림의 간편한 복장으로 기도회를 인도했다.
그 시기 울산은 공업도시가 시작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모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교회에도 대부분 외지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거창에서 아들을 따라 오신 노인이 한 분 있었다. 그분은 일제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옥고를 치르신 주남선 목사님 밑에서 경건한 신앙을 배운 사람이었다. 칠순이 넘은 연세인데도 매일같이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발을 흙탕물에 잠그면서 교회에 온다. 예배당에 들어오면 마루 바닥에 앉아 수건으로 발을 닦고 가방 안에서 양말을 꺼내 신고 대님을 치고 두루마기를 입고 앉아 예배를 드린다. 어느 날 나는 불을 켜고 찬송을 인도를 하다가 노인 집사님의 그런 태도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비 오는 날에도 가방에서 두루마기를 꺼내 입고 예배를 드리는 그 노인은 노타이와 잠바차림으로 예배를 인도하는 전도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괴로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 아침부터 넥타이를 매고 양복 상의를 입고 예배를 인도했다. 그때 나의 마음을 강타한 그 집사님의 모습은 나에게 예배자의 정신을 일깨워 주는 따가운 교훈으로 다가왔다. 그날 이후로 40년, 나는 한 번도 공예배나 새벽기도회에 노타이 차림으로 나가지 않는다. 부교역자들이 새벽예배를 인도할 때도 나는 언제나 넥타이에 양복 상의를 입고 앞자리에 앉는다. 입고 있는 차림으로 기도의 질과 내용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의 태도와 정성이 거기에 묻어난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