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고린도후서 7:10


죄에 대해 통회 자복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회개는 자연의 정원에서 자라기에는 너무 고상한 꽃입니다. 진주는 조개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라지만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 안에서 역사하실 때를 제외하고는 죄인들 안에서 저절로 자라는 법이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정말 죄를 증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가시들은 무화과 열매를 하나도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요 3:6).

진정한 회개는 특별히 구세주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회개할 때 한쪽 눈으로는 죄를 바라보고 다른 한쪽 눈으로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니면 양쪽 눈을 다 그리스도께 고정시키고 그의 사랑의 빛 안에서 우리의 허물만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죄를 진심으로 후회하고 슬퍼하는 것은 아주 실제적인 일입니다. 아무도 죄 안에 살고 있으면서 죄를 미워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죄의 악함을 보게 하되 이론적으로만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도 보게 합니다. 마치 불에 덴 아이가 불을 무서워하듯 그렇게 죄를 무서워하게 됩니다. 마치 최근에 강도를 만나 곤욕을 치른 사람이 고속도로 위에서 다시 강도를 만나게 될까봐 두려워하듯 그렇게 죄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피하되 모든 점에서 죄를 피하려 듭니다. 마치 사람이 큰 뱀뿐 아니라 작은 뱀도 무서워 피하듯 큰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작은 문제에서도 죄를 범하지 않으려 합니다. 진심으로 죄를 통회하게 되면 이 혀로 한마디도 나쁜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몹시 조심하게 됩니다. 매일매일의 행동 속에서도 절대 남을 불쾌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매일 밤 자신이 잘못한 것을 가슴 아프게 고백하며 그날을 마감하게 됩니다. 매일 아침마다 오늘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하지 않도록 붙잡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하루를 시작합니다.

진실된 회개는 계속적입니다. 성도들은 죽는 그날까지 회개합니다. 똑똑 떨어지는 이 샘물은 떨어지다 말다 그러지 않습니다. 다른 슬픔들은 시간이 가면 사라지지만 이 사랑스러운 슬픔은 우리의 성숙과 함께 자랍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때까지 그것을 즐기고 그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도록 허용해 주신 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만큼 그렇게 달콤한 괴로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