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예레미야 2:2
그리스도에게는 그의 교회를 생각하고 그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몹시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에 유념합시다. 새가 그 둥지로 자주 돌아오고 여행자가 서둘러 자기 집으로 돌아오듯, 사람의 마음도 자신이 택한 대상을 계속 추구하는 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무리 쳐다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항상 보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 전부터 “그는 인생들을 기뻐하셨습니다.” 그의 생각은 언제나 이 세상에서 자신의 택자들을 택하게 될 그때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의 예지 속에서 그들을 보셨습니다. 그는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 139:16)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기초가 세워졌을 때도 주님은 거기 계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수에 따라 열방의 경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성육신하시기 전에도 인간의 모습으로 여러 번 이 낮은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창 18장), 얍복 강가에서(창 32:24-30), 여리고 성 밑에서(수 5:13), 그리고 바벨론의 풀무불 가운데서(단 3:19, 25) 그의 백성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의 영은 그의 백성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떠나서는 절대 쉬지 못하십니다. 마음이 늘 그들에게 가 있습니다. 속으로 그들을 생각하지 않으시는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그의 손에 새기고 그의 옆구리에 새겼습니다. 이스라엘 대제사장의 가장 훌륭한 장식품은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들이 새겨진 흉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가장 귀히 여기는 보물도 그의 택자들 이름이 간직된 그의 흉배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온전하심에 대해 묵상하는 일을 자주 잊어버리지만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들을 기억하십니다. 따라서 이전에 주님을 자주 망각했던 우리 자신을 책망하며 이제부터라도 주님을 잘 기억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여호와여, 우리 영혼의 두 눈에 당신 아들의 형상을 새겨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