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것과 위대한 것
오래전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작품 레 미제라블(Le Miserables)을 읽고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 장발장의 일대기에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소설 마지막 장면에 보면 세느 강가를 거닐며 고민하다 결국 투신하는 한 사나이가 나온다. 자벨 경감... 그는 평생을 사법경찰관으로서 나라의 법과 질서를 지켜 정의롭고 밝은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자벨 경감은 장 발장이 미리엘 주교의 집에서 은촛대를 훔쳐 나올 때부터 끈질기게 그의 뒤를 추적하며 기어이 그를 법정에 세우고 감옥에 보내려고 기를 썼던 사람이다. 자벨 경감의 눈에 비친 장 발장은 탈옥수이고, 재범 삼 범의 전과자일 뿐이며, 그 사람이 활개치고 다니는 동안은 어디서 누가 또 어떤 피해를 당할지 모를 화근이 된다고 보았다. 그런 장 발장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선량한 시민으로, 사랑 많은 자선사업가로, 그리고 훌륭한 시장님으로 존경받고 있는 것이 자벨에게는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국가의 기강과 정의 사도로 자처한 자벨 경감에게 견딜 수 없는 혼란의 충격과 고통을 안겨준 일이 생기고 말았다. 시민혁명이 일어나 전제군주의 왕정이 무너지고 새로운 공화정치가 시작 되는데 왕정의 충복이었던 그가 이번에는 시민군에게 체포되어 처형을 당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자벨은 하필 그가 그토록 추적해왔던 장 발장의 손에 넘겨져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치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장 발장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자벨을 데리고 가서는 하늘을 향해 공포탄을 발사한 다음 포승줄을 풀어주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냥 돌아가게 해 주었다.
이때부터 자벨 경감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혼란과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도대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쫓고 있었단 말인가? 그토록 붙잡고 지켜야 된다고 믿었던 국가의 법과 기강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자기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했고, 또 사실 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며 나라를 안정되게 할 수 있었던 최상의 가치가 준법이라고만 믿었었는데, 만약 그것이 옳았다면 장 발장은 당연히 정죄되고 처벌받아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보니 그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크고 위대한 인물이었고 거기 비하여 자기는 한없이 초라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결국 작가는 법과 정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되고 그것 또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법과 정의의 척도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것이 바로 ‘사랑’ 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고 여겨진다. 법과 정의가 바로 서서 세상을 질서 있고 바르게 이끌어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세상을 더 딱딱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경직되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하였다(고전 10:23-24).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