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01.14 14: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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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서울 가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이 다투면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는 말은 옛날부터 있어 왔다. 설명하자면 대충 이런 이야기이다. 어느 시골 동네에서 서울 구경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서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서울역에 내려서 남산 위에 올라가 소나무도 보고 또 경복궁 창경원 등 이름난 곳을 다 보았는데 남대문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서울역 가까운 곳에 국보 1호로 지정된 2층 기와집의 큰 건물을 사람들은 남대문이라고 했는데 그 헌판에 새겨진 이름은 남대문이 아닌 다른 이름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 가 본적이 없는 사람이 나서서 “남대문을 남대문이라 쓴 것이 당연하지 무슨 다른 이름을 썼겠느냐? 자네가 잘못 보고 하는 말이다”고 핀잔을 주었다. 지금도 그 앞을 지나가 본 사람은 남대문의 헌판이 숭례문(崇禮門)으로 표기된 것을 대번에 알게 된다. 그래서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은 대단히 옳은 말이라고 함이 마땅하다.

요즈음은 교통과 통신이 좋아졌고 우리의 문화도 과히 지구촌 시대를 실감하게 되었지만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에는 성지순례 가는 것을 꿈같은 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성지순례 한번 안하고도 성경에 있는 지명이나 이스라엘의 생활풍습 같은 것을 가지고 설교를 하든지 주일학교 공과를 가르칠 때 자기가 보고 겪은 것처럼 자신 있게 가르치곤 하였다. 그러다가 성지순례를 다녀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사실과 다르게 알고 가르친 것이 탄로 나기 시작했다. 그곳의 기후나 풍토 또는 역사와 문화의 배경을 무시한 채 순전히 우리의 문화와 환경에 맞게 인식하고 있던 것들이 현장에 가서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학교 다닐 때 고대 랍비들이 성경 사본을 필사할 때 양 가죽(羊皮紙)위에나 갈대로 만든 종이에다 지워지지 않는 물감으로 기록했다고 배웠다. 그때도 우리의 관점에서는 양의 가죽을 어떻게 가공하여 종이가 되는 것인지, 딱딱하고 부러지기 잘하는 갈대를 어떻게 종이처럼 펴서 글을 쓸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처음 애굽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나일강 근처에서 나는 식물을 잘라 와서 물을 빼고 방망이 같은 것으로 얇게 누른 다음 우리나라의 창호지 같은 종이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그게 성경의 사본 역사와 함께 오랜 전통의 파피루스(papyrus)문화인 것이다. 지금은 성지를 찾는 외국 사람들에게 성지문화를 편리하게 접할 수 있도록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기구와 생활풍습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표본 마을도 만들어져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어학연수를 위하여 세계 여러 곳으로 진출하고 있고 많은 젊은이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서 지구촌 곳곳을 누비고 있다. 바깥세계로 나가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자기의 마음의 세계를 넓히며 인식의 정확성을 고취하게 된다는 교육적인 목적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비용과 어려운 시간을 밑천 들여서 무형의 자산을 얻기 위한 값진 도전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 교회도 오는 2월 26일부터 4박 5일간 권사님들이 중심이 되어 태국과 베트남 지역으로 단기선교 세미나를 계획하고 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선교현장을 직접 보고 부딪치는 가운데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며 효과적인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현지 선교사들에게 힘을 보태 주고 또 자신들이 크게 도전받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