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02.18 14: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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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그릇


   옛날부터 사람의 됨됨이나 인품을 두고 “그릇이 크다”고 하거나 “그릇이 못 된다”는 말로 표현하곤 하였다. 인물이 출중한 것은 외모의 준수함이나 매너 있는 행동으로도 나타나지만 무엇보다도 그 마음의 크기에 정비례 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편협한 마음 때문에 서로 분쟁이 있고 갈등이 심한 것을 보고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했다.

과연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사람은 누구일까?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인 경우 대부분 그 도량이 크고 마음이 넓어서 여러 사람을 포용하고 껴안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렇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결정적인 상황이 오거나 자기의 이해관계와 맞닿는 순간이 되면 넓은 마음도 좁아져 버리는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사실 누구나 본받을만한 넓은 마음의 모델은 예수님 밖에 없다고 본다. 성경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다. 과연 예수님의 마음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의 크기를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는 단위로 표현 하면서 과히 측량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경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거기서 거기라 할 만하고 어찌보면 “도토리 키 재기”에 불가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마음의 그릇을 키운다고 할 때 근접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으로 탈바꿈 하는 것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씩만 여유를 가지며 틈새를 넓혀 나가는 것으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작은 것에서부터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의 공간은 점차 넓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긴다는 것은 나의 자존심이나 인격에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존심을 살려주는 것이 되며 인격이 성숙해 지는 현상임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 개혁자 루터(M. Luther)는 이와 같은 경우를 두고 재미나는 예화를 소개하였다. ‘산양(山羊)두 마리가 외나무다리 위에서 마주쳤다. 비켜 갈 수 없는 좁은 다리위에서 자칫 둘 다 물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중 나이든 산양이 먼저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렸다. 맞은편에 있던 산양이 잽싸게 그 위를 밟고 넘어갔다. 그제야 엎드렸던 산양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유유히 다리를 넘어갔다는 것이다. 예화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어느 것이 자존심을 살리는 일이고 어떤 결과를 얻어 내는 것이 성숙된 인격의 모습인지 대답은 자명하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의 경우를 체험하게 된다. 그중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그런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실 조금만 여유 있게 들여다보면 별것 아닌데도 말이다. 피나는 훈련과 학습을 통하여 체력도 튼튼히 하고 지식도 높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일에 더욱 매진하여야 하겠다. 태평양 바다처럼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가이없도록…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