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려수도(閑麗水道)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도 부근에서 사천시, 남해군을 거쳐 전라남도 여수에 이르는 바닷길을 한려수도라고 부른다. 연장 300여리 되는 이곳 해역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섬들과 다양한 어족들이 있어서 소위 남해안의 황금어장으로 알려져 있다. 통영 앞에 있는 한산도와 삼천포를 거쳐 하동과 남해 사이의 노량 해협과 여수에까지 그 바다에 있는 섬들과 지명들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을 무찌른 전적지로도 그 이름이 알려진 지역이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1986년 이곳을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한바 있다. 나는 간혹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사천 비행장까지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하늘에서 내려다본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는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것 같다고 표현하고 싶다. 오래 전 일이지만 부산에서 여수까지 여객선을 타고 지나갈 때면 섬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와 절벽, 그 사이사이에 서식하는 동백꽃 군락, 곳곳에서 그물질을 하고 있는 어부들, 물위를 나는 갈매기 떼 등 시야에 들어오는 정경들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만하다. 여객선 갑판위에서 상큼한 바다 바람을 마시며 스쳐 지나가는 정취에 흠뻑 빠져보는 낭만이야 말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이 안 될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어릴 때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그때의 정서를 그리워하며 동심으로 돌아가는 성향이 있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것도 고향이 거제도 섬 마을이라는 것과 또 어린 시절 바다에서 보고 느낀 것이 많이 있어서 바다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는 바다는 언제나 친근하고 사랑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그와 반대의 현상으로 돌변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고요하고 낭만적인 바다, 그 위로 떠다니는 배들과 평화스럽게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와 물새들의 노래 소리 등 어느 것 하나 싫은 것이 없다. 그런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고 거기서 활동하는 어촌마을 사람들에게는 바다가 곧 삶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때때로 그 바다는 변화무쌍한 세상을 반영 하는 것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둔갑해 버리곤 한다. 기상의 변화에 따라서 한순간 성난 파도로 엄습해 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재앙으로 돌변해 버린다. 1959년 9월에 남해안을 휩쓸어 버린 “사라호”라는 태풍은 그 악명만큼이나 많은 피해를 남기고 지나갔다. 바다 위에 떠있는 배들은 물론이고 방파제와 여러 가지 구조물들과 바닷가 마을들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폐허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때 가족과 재산을 잃어버린 바닷가 사람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상처를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더러는 바다를 원망하면서 한을 품고 원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바다는 우리에게 두 얼굴을 가진 세상의 체질을 알게 하여 주는 것인지 모른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가보고 싶고 마음속의 찌들어 있는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 버릴 것 같은 낭만적인 존재로서 뿐만 아니라 생업의 터전으로 부와 풍요의 활동무대 이기도 한 바다는 누구에게나 매력을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노도광풍으로 뒤엎어지고 공포의 현장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바다에 대한 불안과 긴장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산다. 동백꽃이 어우러진 한려수도의 정취를 즐기면서 이 바다가 또 다른 의미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