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07.15 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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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막의 신음소리

 

     지금부터 8년 전, 우리교회 어느 장로님이 중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힘든 일     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내가 그 일을 알게 되었는데 어찌 보면 이 일이 장로님     한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분단된 조국과 우리 민족이 겪게 되는(겪고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되어 이를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 장로님은 해방된 지 2년 후 1947년 부모님과 함께 북에서 남으로 넘어 오신분이다. 장로님의 고향은 함경북도 길주군이었는데 그때 가족의 일부가 넘어오면서 연로하신 조부모님과 함께 일곱 살 된 남동생 하나를 남겨 놓았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나도록 남은 가족의 생사도 알지 못하고 안타까운 세월을 살아왔는데 뜻밖에도 안기부(국정원)에서 생각지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고향에 두고 온 막내 동생이 지금 중국 산동성에 와 있으면서 한국에 있는 형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장로님은 하는 일도 바빴고 또 집안에 대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이 일이 더 급하다고 생각하고 그분들이 일러주는 대로 달려가서 동생을 만났다. 일곱 살 때 헤어졌으니 오랜 세월이 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장로님이 상상했던 얼굴과는 너무나 판이했다. 깡마른 얼굴에 핏기 없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느 한곳 닮은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한편 장로님을 만난 그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국에 들어와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장로님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곳에서 호적을 만들고 중국의 국적을 취득한 다음 그곳 영사관을 통하여 비자를 만들어 한국으로 들어오는 절차를 밟아야 되는데 이 일은 장로님이 동생을 초청하는 형식이 되어야 한다. 물론 장로님은 많은 물질과 시간을 들여 돌봐주었다. 그런데 모든 수속이 다 끝나고 난 다음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장로님의 친동생이 아니고 고모의 아들 되는 사람이었다. 장로님의 동생은 탄광에서 노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여 83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친동생인줄 알고 그토록 공을 들여 뒷바라지를 해주었던 장로님은 매우 허탈하였지만 한편으로 그렇게라도 해서 한국으로 오려고 했던 고종 동생을 원망할 수만은 없었다고 한다.

<붉은 장막의 신음소리>는 장로님의 사촌 동생 되는 김광호라는 분이 최근에 펴낸 책의 이름이다. 이분은 함경북도에 있는 청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가 되어 남쪽으로 넘어올 때까지 그곳에서 의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고등고육을 받은 데다가 의사라는 신분으로 북쪽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자유롭고 활동 폭이 넓은 분이었기에 그곳에서 겪어 나온 일상들을 많이 알고 또 생생하게 전해줄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짐작은 하였지만 북쪽의 실상이 그토록 참담하고 어려울 것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는 “한 두 끼 먹을 강냉이 죽조차 없어 떠돌아다니며 걸식해야 했던 사람, 그래도 의사로서 인간 세상의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은 것을 자그마한 보탬도 없이 수식도 없이 있는 그대로 쓴다”고 하였다. 그는 또 <붉은 장막의 신음소리>를 “권력체제의 모순 속에서 부르짖는 신음, 굶주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처참한 신음, 사랑 때문에 울부짖는 신음”이라고 하였다. 정말 권력의 세습과 독재의 아성에 짓눌린 채 신음소리만 내고 있는 북쪽의 동포들을 어찌해야 될 것인지? 이 글속에서 나 역시 그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다만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웃음소리, 감사의 소리를 찾아 줄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과 가슴이 저밀뿐이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