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것이 어디 의술뿐이랴
여름이 가까워지면 사무실에 이런 문의가 많아진다. 방학 때 섬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여 지역을 선정해 달라는 것과, 학생 수련회 장소를 구하는 문제, 그리고 가끔씩 휴가철 섬 사정을 묻는 것 등이다. 예전에 섬 봉사활동 가운데 단연 으뜸은 여름 성경학교였다. 섬교회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아마, 말씨 세련되고 피부 하얀 육지에서 온 그때의 앳된 선생님을 잊지 못할 것이다. 땀 냄새 가득한 비좁은 예배당 안에서, 간혹은 넓은 학교 운동장 오동나무 밑에 올망졸망 모인 섬아이들은 그들의 말 한마디를 놓칠까봐 새까만 얼굴을 앞으로 더 내밀기 일쑤고, 그때 배운 노래는 내년 이맘때까지 불러야 할 주제가이기에 목청껏 따라 부른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모습은 몇 개의 큰 섬교회 외에는 볼 수가 없다.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 성경학교를 돕겠다고 문의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학교를 폐쇄해 버린 우리나라 교육 정책에 원망만 하나 늘 뿐이다. 반가운 손길이 있어 그래도 여름은 기다려진다. '익투스', 충남의대 기독학생회 출신 의사, 간호사들의 의료인 공동체이다. 1994년 전남 고흥군 연홍도에서 제1차 진료를 시작으로 매년 섬만 달리하며 활동하고 있다. 올해로 열 네 번째이다. 사실 의료선교 목적으로 몇몇 단체와 연결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일시적이었다. 이 단체가 남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해를 거른 적이 없다. 진료팀 모두가 바쁜 일상이기에 날짜를 꼭 공휴일인 7월 17일 제헌절 전후로 잡는다. 작년에는 관매도에서 있었고, 올해는 비금도에서 7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준비하고 있다. 무거운 의료기구도 부족해 먹을 쌀부대까지 짊어지고 이들은 왜 섬을 찾을까? 미련한 질문이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섬에 사는 사람들이니 무슨 질병이 있을까 싶지마는 그렇지 않다. 부녀자들은 밭에서나 바다에서 항상 쪼그리고 일을 하니까 무릎 관절염과 허리 디스크 질병이 많고, 또 잠수(해녀)들은 수압 때문에 두통이 심하다. 술을 많이 마시는 섬 남자들에게는 간이 좋지 않다. 도시처럼 정기 검진할 처지도 아니니 몸이 아파도 참고 있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때 익투스 진료팀의 초음파 검사나 위내시경 검사는 이들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의 헬라어 첫 글자를 모아 합성한 단어가 '익투스'인데 공교롭게도 '물고기'라는 단어와 같다. 그래서 초대교회 핍박 시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신분과 신앙고백의 상징으로 물고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섬사람들에게 이들이 하고 싶은 것은 꼭 의술만은 아닐 것이다. 심장 박동을 일으키는 전류와 같이 물고기 한 마리가 그들 가슴속에서 출렁거리는 것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