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09.16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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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을 지키는 일

 

옛날 우리의 선인들의 자랑인 ‘선비사상’은 자존심과 품격에 맞는 체통문화라고 할 수 있다. ‘선비는 얼어 죽어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 거나, ‘물에 빠져도 개 헤엄은 치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남긴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사대부들의 자존심 지키기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자존심(自尊心)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굽히지 않고 제 몸을 스스로 높이는 마음’ 이라고 되어있다. 자존심에 관한한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서양 사람들이 오히려 더 소중한 가치로 여겼던 것 같다.

고대 로마의 귀족 사회에서는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된다’는 말이 불문율로 지켜졌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은 ‘귀족의 의무’를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높은 지위나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프랑스 사람들은 귀족이나 왕족에 해당하는 경우 스스로 엄격한 도덕적 기준과 신분에 따르는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자기의 금도를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지켜야 될 자존심이 있다. 적어도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무리’로 불리우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도덕성과 엄격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베드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다(벧전 2:9).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강조하신 예수님께서도 그리스도인이 말 없는 희생과 헌신으로 자기의 소임을 다할 때 누구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카리스마가 행사 되는 것을 암시해 주셨다.

국법으로 선교를 금지 해 놓은 나라와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람은 이미 순교적인 각오를 하고 목숨을 하나님께 맡긴 사람들이다.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불가피하게 죽음과 마주서는 현장에서 구차하게 피할 길을 찾느라고 신분과 책임을 망각해 버린다면 이미 소중한 가치는 잃어버리고 만 것이 된다. 몇 년 전 필리핀에서 활동하던 어느 선교사는 어린 아들을 폭력집단에 납치당한 일이 있었다. 몸값을 노리고 어린이를 납치해간 테러범은 곧 바로 부모에게 거액을 요구하며 불응할 경우 몇 시간 안에 아이를 살해 하겠다고 협박해 왔다. 이 선교사는 우리교단 소속으로 서울에 있는 어떤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았는데 이 사건이 터지자 선교사를 보낸 그 교회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긴급히 회집된 당회에서는 몸값을 얼마를 주던지 일단 아이를 살리도록 해야 된다는 결정을 하고 선교위원장을 현지로 급파 하였다.

같은 문제를 두고 필리핀 현지의 선교사회가 모였는데 그들의 의견은 부모가 테러범의 요구를 받아 들여 몸값을 주고 아이를 빼 나오게 되면 이후부터 모든 선교사의 자녀들은 강도들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선택은 부모에게 맡긴다고 했다. 그때 선교사 부부는 자기 아들을 선교지에서 바치는 첫 제물로 생각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선언하였다. 부모의 비장한 결심과 함께 모든 선교사 가족들은 합심 기도에 들어갔고 그 시간에 하나님은 기적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폭도들이 아이를 외딴집에 데려다 놓고 조직원인 한 여자에게 지키도록 명령하고 떠나갔다. 그날 밤 이 여인은 마음에 갈등을 빚던 끝에 가까운 파출소에 연락을 했고 그 아이는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실시간대로 온 땅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에 그대로 포착된 사건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심은 곧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기 때문에.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