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소동 우리교회 어느 집사님이 주보에 나오는 담임목사 얼굴에다 그림을 그렸다. 소갈머리도 주변머리도 없이 그냥 훤하게 된 민둥숭이가 어지간히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미술의 솜씨가 뛰어난 분인지라 2대 8 가리마를 만들어 젊고 예뻐 보이게 그려놓은 것이다. 알고 보니 여러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목사의 얼굴 개조에 동참하고 있었던 것 같다. 주보를 받아들고 거기 인쇄된 메시지는 읽기나 했는지 모르지만 장난삼아 얼굴의 윗부분에 제멋대로 덧칠을 해놓고는 “거참 잘-생겼다”하고 놀렸는지 모른다. 마주대할 때마다 머리가 홀랑 벗겨져 볼썽사나운 몰골이 측은하게 여겨져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 나름의 목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시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간혹 나를 앞에 앉혀두고 그 머리에 가발을 쓰면 어찌될까? 하고 찬반 토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나야 물론 내 모습 이대로가 좋고 또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생긴 그대로 살아야지 달리 변통을 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가발을 쓰고 다닌다면 자기 목사의 가공된 얼굴을 보는 교인들이 매우 혼란스러워 할 것만 같다. 강단에 선 목사를 쳐다보는 교인들의 눈이 위장된 목사의 얼굴을 놓고 각인각색의 평가를 하려 들것이다. 내 얼굴에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마저도 이전에는 민둥산에다 식수를 하고 예쁘게 만들어 주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는 그것을 벗겨내고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일에 몰두하려 할 것이다. 암만해도 가발 쓰고 다니는 목사라면 사람들이 순수하게 보지 않을 것만 같다. 목사의 얼굴이 위장된 것을 알고 나면 그가 하는 말과 행동까지도 꾸민 것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가발을 권하는 사람이 있어도 나는 못 들은척 그냥 넘기곤 한다. 그런데 며칠 전 나로부터 가발소동이 벌어졌다. 모처럼 구역장들과 통영에 가서 1박 2일간 M.T를 갖게 되었는데 출발에 앞서 모두들 10년은 젊게 보이도록 멋진 모습으로 참가해야 된다고 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자기 나이보다 평균 10년 이상 젊게 보이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용모나 품위를 돋보이게 해 줄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은 보통사람보다 10년은 늙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평소 모습 그대로와도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민둥숭이 머리부터 식수를 하던지 변통을 내지 않고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떠나는 날 아침 새벽기도에 나온 어느 집사님을 내 방으로 불러 그가 쓰고 있는 뚜껑을 벗겨서 내 이마위에 덮어 보았다.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일회용 이벤트로는 괜찮을 것 같았다.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보안이 유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그것을 가방에 숨겨 갔다. 저녁 예배시간 직전 가발을 쓰고 방안에 들어섰더니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급조된 위장술이지만 그래도 얼굴형에 맞았어야 되는데 정말 보기 민망한 지경이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그런 나를 보는 사람들이나, 그런 행색을 하고 나타난 내 자신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날의 해프닝이 있은 후 생각해 보니 얼굴을 10년쯤 젊어 보이게 만드는 일은 다른 사람 보다 내가 훨씬 더 쉬울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 사실 그날 제대로 맞는 것을 골랐다면 단연 압권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