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행복지수(幸福指數)
언젠가 매스컴에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했더니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했다. 이 발표를 듣고 많은 사람들은 그 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 문하 모든 면에서 다른 나라들 보다 뒤져 있고 기후나 자연 조건을 봐서도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왜 그런 통계가 나왔는지 의아해 했다. 사람들은 흔히 ‘행복한 돼지와 고민하는 소크라테스’를 논하곤 한다. 무엇이나 배 불리 먹고 그냥 들어 누워 꿀꿀거리며 잠만 자는 돼지에게는 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개념이 있을 수 없다. 돼지처럼 걱정이 없다는 것을 행복의 지수로 삼는다면 이는 본능적인 욕구 충족에 만족하는 동물적 삶에 불과할 것이다. 거기 비하여 소크라테스의 고민은 먹고 입고 사는 육신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본질적인 가치와 목적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두고 연구하며 가르치려 하는데 있었을 것이다.한 평생 편안한 날을 보지 못하고 온갖 고생을 다 하며 말년에는 옥중에서 죽음의 날을 기다렸던 바울은 자기의 생애를 가장 행복하고 성공적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딤후 4:7-8). 무엇보다도 확실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가장 건전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을 때, 결과에 상관없이 자기의 삶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은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인 예수님의 삶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의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복음서 기자에 의하면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하였다(눅 2:52).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사랑 받고 모든 사람들에게 아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없을 것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고, 많은 재산을 소유한 사람도 있고, 모든 사람에게 잘 알려져 있는 명망가도 있지만 그런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도 남을 힘들게 하고 여러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섬기는 삶을 실천할 때 비로소 행복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을 모델로 하고 그 한 부분이라도 따라 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작은 것이라도 가지고 베푸는 삶을 실천하고자 애를 쓴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그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준다.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이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것만큼 나의 행복지수도 높아져 가고 실적도 많이 쌓이게 된다. 2007년을 결산하면서 우리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가 헤아릴 수 있는 행복의 실적을 ‘얼마나 받았느냐’에서 찾지 말고 ‘얼마나 주었느냐’에서 찾아보면 쉽게 그 대답이 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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