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라는 말의 용도
오래전 부산에서 있었다는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날 교회 집사 한 사람이 주일예배에 출석을 하지 않았는데 담임목사가 여전도사에게 결석한 연유를 알아보라고 했다. 여전도사의 보고에 의하면 그 집사가 남의 집에 들어가서 돈을 훔치다 붙잡혀서 죽도록 맞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누워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담임목사는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그래도 집사가 아파서 누워있다는데 못 들은 척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여전도사와 권찰을 대동하고 심방을 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여전도사가 방문을 두드리며 ‘집사님, 목사님께서 심방 왔습니다’하고 알렸다. 조용하던 방안에서 금새 ‘으-응, 으-응’ 하며 신음소리가 들리더니 머리와 팔을 붕대로 감은 채 집사가 방문을 열어 주었다. 방안에 들어간 목사 일행이 잠시 묵상기도를 한 후 눈을 뜨면서 ‘집사님,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그래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하고 말을 건넸다. 목사의 인사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집사 하는 말 ‘ 응- 목사님! 제가 당하는 고생이야 뭐 대단하겠능기요.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 고생도 참으셨는데...’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면서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런 경우 목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대부분은 ‘그렇고 말고요, 아무쪼록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서 잘 참으세요’하고 위로 할 것이다. 그리고는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라는 찬송을 부르고, 이어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성경 말씀으로 권면하거나, 심금을 울리는 축복의 기도를 해 주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의 욕구성향이 그럴 것이라는 뜻이다. 참으로 목회자의 양심과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서릿발처럼 차갑게 책망하고, 칼을 가지고 도려내듯이 아프게 회개를 유도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불쌍한 영혼을 끌어안고 책임 있는 기도를 해야 되지 않겠는가? 아합왕시대 사마리아 광장에 모인 400명의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왕의 귀를 즐겁게 하는 예언만 해주었으나 오직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는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는 것” 그것만 전하다가 결국 고생의 떡을 먹고 고생의 물을 마셨다는데 이게 옛날이야기만 아니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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