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8.06.22 18:56:00
1962

목사의 자존심

 

내가 어렸을 때 거제 지역에서 목회를 하신 목사님 한분을 기억하고 있다. 그분은 한학에 정통하신 분으로 전형적인 한국의 선비요, 신사였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시고 그 시대 목사님들 중에서는 흔치 않은 만큼 학문과 덕망을 겸전하신 분이었다. 지금은 거제시가 대형 조선소를 비롯하여 산업과 경제의 중심지로서 각광을 받으며 수준 높은 도시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교통이나 문화에 외진 곳으로 환경이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도서지방에서 해안을 끼고 있는 마을들은 전통적으로 우상숭배와 미신이 성행하여 기독교나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고 그만큼 박해도 심하였다. 6.25 동란이후 거제도에 피난민이 몰려오고 포로수용소가 생기는 등 인구의 급등과 함께 외지 문화가 들어오면서 여기저기에 교회가 세워지고 기독교 인구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목사님들의 수효가 얼마 되지 않은 때이고 또 그곳에 있는 교회들이 대부분 자립을 못하는 어려운 교회들이었기 때문에 목사님 한분이 30여 처의 교회를 순회하며 지도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그 목사님은 연세가 60이 넘으신 분인데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마을들을 걸어 다니며 주일 저녁이나 수요일 같은 때 이 교회, 저 교회로 순회를 하신 분이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길을 가시다가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밑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긴 숨을 내시며 무심코 던진 말이 “나무야 너도 목사가 되었더냐?”라고 하셨더란다. 목사님이 말을 건넸다는 그 정자 (槐木)나무는 수령이 오래된 고목인데 속이 텅 비어 있었다. 목사님은 그 나무를 보는 순간 속이 다 썩어서 텅 비어 있는 것이 자기와 비교가 되었던 모양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만 목회자는 항상 자기와의 싸움을 싸우는 자이고, 항상 자기 속에 있는 혈기나 정욕, 자존심과 같은 자기의 개성을 죽여야 하기 때문에 속을 썩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솔로몬 왕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한말은 아마 목사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는 덕목이라고 보아야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고 다른 사람위에 군림하는 것을 자존심인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목사님은 끝도 없이 자신과 싸우며 속이 다 썩어 없어지도록 자기를 비움으로서 주님의 자존심을 지키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