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람데오(koramdeo) 나는 60년대와 70년대에 신학교를 다녔다. 내가 다녔던 고려신학교는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투옥되었던 분들이 해방 후 진리파수와 경건운동을 표방하며 설립한 학교이다. 그 학교는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라는 교훈이 말해주듯이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경건훈련에 집중하였다. 나는 학부 4년과 신학대학원 3년을 한해도 쉬지 않고 계속하면서 입학부터 졸업할 때까지 모든 시험에는 감독관이 없는 시험을 쳤다. 담당 교수가 나와서 시험지를 나누어주고 기도를 한 다음 자리를 비워버리는데 어느 누구도 컨닝을 하거나 불미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이 그 학교의 전통이고 자랑이었다. 그 당시 신학생들은 교회를 섬기는 전도사가 많았는데 대부분 평일이면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주말이 되면 섬기는 교회에 돌아가곤 하였다. 신대원 3학년 1학기 기말시험 때 사건이 생겼다. 마지막시간 시험을 끝낼 무렵 반장이 “시험이 끝난 다음 한사람도 돌아가지 말고 그대로 남아 있으라”고 광고를 했다. 모두들 이불 보따리와 책가방을 챙겨가지고 기차나 시외버스를 타기위해 떠나야 되는데 차 시간을 놓치면서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반장은 이유를 말하지도 않고 그냥 찬송을 부르고 기도회를 인도하는 것이다. 그가 대표 기도를 하면서 “우리 형제 중 한 사람이 실족을 하였으니 용서해 주옵소서”하고 회개하는 기도를 하였다. 그때부터 모든 학생이 한마음이 되어 우리가 부족해서 그렇게 되었으니 용서해 달라고 통성기도를 하였다. 기도를 하면서도 실족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지도 않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개학이 되어 학교에 왔을 때 한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말에 그 친구는 방학기간 학교에 자진 휴학계를 내고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우리보다 1년 뒤에 졸업을 하였는데 목사가 된 후 30년이 넘도록 성실하게 목회를 잘하고 있다. 아무리 신앙이 좋고 경륜이 높은 사람이라도 순간적인 실수나 과오를 범할 수는 있다. 문제는 정말 하나님을 의식하는 신전인격(神前人格)자라고 할 때 신앙양심을 따라 행동하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곧 ‘코람데오’를 신조로 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수준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