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다이어리를 받아 든 기분으로

해가 바뀌면 사람들은 새로운 한 해의 목표를 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1년 열두 달 365일을 요일과 날짜에 맞게 다이어리에 표시를 하고 중요한 계획들을 메모해 나간다. 나는 양지사(陽志社)에서 제작한 업무일지(Personal Diary)를 75년부터 사용했는데 올해로 35년째가 된다. 우리교회 성도 중에 양지사에 관계했던 분이 계시는데 내가 그 회사 제품을 쓰는 줄 알고 해마다 연말이 되면 새다이어리를 선물로 보내주고 있다. 앞표지 다음 장은 연간계획표와 월간 계획표가 있고 그 다음부터는 매일 한 페이지씩 넘기며 그날에 있었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게 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일기쓰기에 습관을 들였더라면 매일매일 있었던 일 가운데 잘한 것과 못한 것, 또 생각하고 느낀 것을 수기 형식으로 기록해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분주하게 돌아가는 일상 가운데 중요한 행적의 기록은 남겨져 있어서 이것을 들추어볼 때마다 지난날을 회고하며 여러 가지 감회를 느끼곤 한다.

나는 연말이 되어 새 다이어리를 선물 받을 때마다 마음에 설레임과 함께 부담도 느낀다. 새로운 한해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계획표를 작성한다는 데는 기대와 설레임이 있지만, 한편으로 별로 의미 없는 날을 살게 된다거나 아니면 들추기 싫은 내용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면 어찌할까 하는 불안도 있다. 언제나 불확실성의 연속인 목회현장을 겪으며 마냥 감사할 일들만 있고 좋았던 내용만 기록할 수 없었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읽은 책의 머리말에 “그분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365일을 아무 조건 없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름답게, 감사하게 쓰겠습니다.”고 한 어느 크리스천 시인의 글이 있었다. 2009년 새해 벽두에 이번도 어김없이 새로운 365일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어떻게 하여 주신 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될까를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다짐으로 받아 왔던 그 날들을 유용하게 쓰지 못하고 허비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것을 탓하지 않으시고 또 다시 깨끗한 365일 맡겨 주셨다. 이번에야 말로 새롭게 받아 든 다이어리에 365일의 기록들이 이기적이거나 탐심으로 얼룩진 데가 없는, 맑고 밝고 깨끗하게 감사의 열매로 채워지기를 희망한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