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09.06.08 11: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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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친 원한(怨恨)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한을 가지고 살아온 민족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중에도 남자보다 여자에게 맺힌 한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청상과부의 수절(守節)과 관련된 ‘홍살문’도 그렇고 ‘씨받이’의 문화나, ‘칠거지 악’을 내세워 소박을 합리화시킨 것이라든지 ‘여자’라는 숙명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아버렸던 가혹한 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된 서리가 내린다”는 옛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경북 영양 지방에 있는 일월산 황씨부인 사당에 얽힌 ‘석문’의 전설이 있다. 신랑, 신부가 첫날밤에 촛불을 켜고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신랑이 소변이 급해서 냉큼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돌쩌귀에 걸려 찢겨 나가고 말았다. 밖에 나간 신랑은 신부가 음탕해서 무례하게 옷을 잡아 당겼다고 생각한 나머지 소변을 보고는 그길로 집을 떠나 멀리 달아나버렸다. 이 일이 있은 후 신부집 방문을 여는 사람은 그때마다 질색을 하여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방은 문이 굳게 닫힌 채로 40년이 지났다.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그 신랑이 우연한 기회에 이곳을 지나가다가 문득 옛날 살았던 곳이 생각나서 그 집을 찾아갔다. 방문을 열어보니 신부는 40년 전 첫날밤 그 모습 그대로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쓴 채로 앉아 있었다. 문 돌쩌귀에는 그때 찢겨나간 자기의 옷자락 조각이 그대로 걸려 있었고, 그 광경을 보고나서 신랑은 자기가 성급하게 오해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신부에게 다가가 어깨를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그 몸은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때 신부는 그렇게도 소중한 첫날밤에 감당할 수 없는 치욕과 오해를 받았고, 이후 오래도록 호소할 데도 없이 그 한을 가슴에 안은 채 그 자리에서 한 줌 재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풀지 못한 한을 가슴에 묻어 두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는 모두들 잘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한을 슬기롭게 풀지 못해 원한으로 응어리지면 자신만 아니라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 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천지 어느 곳에나 한 맺힌 사연이 빚어낸 흔적으로 얼룩져 있다. 그것은 해한(解恨)의 바른길을 찾지 못한 안타까운 흔적들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풀리는 길이 있었는데도......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