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자의 위상과 보람
1992년인가 부산항에 있는 중앙부두에서 ‘사랑의 쌀’ 환송하는 예배가 있었다. 그 당시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산하 사랑의 쌀 보내기 운동 본부에서 세계적으로 가난한 몇 개국 사람들에게 쌀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던 때이다. 한국교회가 모금한 돈으로 쌀을 사서 아프리카의 수단이라는 나라로 보내는 것이다. 쌀을 실은 화물선이 출항하기 직전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 시내 여러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모였고 한기총 본부 요원들이 행사를 진행하였다. 그날 아침, 주한 수단 대사가 참석하여 서툰 우리말로 ‘여러분! 참으로 감사합니다. 한국 국민의 이 사랑을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나를 비롯해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감회가 깊었다. 불과 40년 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에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들이 많은 구호물자를 보내 주어서 그 어려운 시절을 겪어온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의 초량 부두는 미국에서 보내오는 잉여농산물을 위시해서 밀가루와 옥수수를 싣고 와서 풀었던 자리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몰래 훔쳐가려고 눈에 불을 켜고 날뛰던 때였으니까.
옛날 어른들이 ‘뭐니 뭐니 해도 배고픈 설움보다 더 큰 설음이 없다‘는 말을 하곤 했다. 우리나라의 60대 이상 되는 사람들은 배고픈 시절의 아픔을 체험하였다. 또 6.25의 국난을 겪었던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 겪는 서러움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안다.
근래에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부터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 작년에는 개발원조위원회(DAC)회원국이 되면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127억 달러나 되는 국제원도를 받았던 우리나라가 그 돈을 종자돈으로 삼아 짧은 기간에 성공신화를 이루어 내었다고 한다. 2차 대전 후 독립한 신생국가인데다 곧 바로 6.25의 전란을 겪으며 전국이 초토화된 폐허위에서 이런 발전을 이룩한 것이 기적이라고 한다. 20세기와 21세기를 통틀어 유일한 나라라고 하며 세계 여러 개발도상국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 성경말씀은 진리임에 틀림이 없다. 받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겪었던 민족적 자괴감에 비하여 주는 국민으로서 누리는 국가적 위상과 보람은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