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교회-자유게시판 (go SGHUAMCH)』 1666번
제 목:눈 오는 날...
올린이:well (한동신 ) 01/02/17 01:01 읽음: 30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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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하루 종일 눈을 쓸었습니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한참을 쓸고 들어와서 차 한 잔을 마시고 나가서 또 쓸고, 노래 몇 곡을 듣다가 다시
나가서 쓸고, 책 몇 페이지를 읽다가 다시 나가 쓸고...
분명히 난 그 추운 날 목덜미까지 땀이 나도록, 어깨 위랑 머리에 하얗게 눈을 쌓아가면서
열심히 쓸었는데, 금새 아무렇지도 않게 내 노력과 수고를 소리 없이 덮어버리는 무심한 눈.
막 화가 나서 미친 놈 처럼 대상도, 악의도 분명치 않은 욕을 해대면서 쓸었습니다.
그러면서 난 문득 당신과 나를 포함해서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불만과 적의도
이와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이렇게 눈이 발목까지 덮을 정도로 쏟아지는 날에도 분명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았는데, 정말 하나도 티가 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분명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짜증나고 화가 나야 했었지만 어느 순간
이후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머리 속이 하얘지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아, 시간이 해결해 주는 구나...
늘 안절 부절 못하고, 이유없이 화가 나고, 우울하고, 짜증나고, 하는 것들...
다 우리가 처음이어서 그렇구나... 젊어서 그렇구나... 하구여...
여러분들은 그 끝도 없이 내리던 눈을 보며, 밟으며, 쓸며,
무슨 생각들을 하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