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교회-자유게시판 (go SGHUAMCH)』 1721번
제 목:두번째 여행기...
올린이:well (한동신 ) 01/05/13 13:16 읽음: 23 관련자료 없음
-----------------------------------------------------------------------------
12월 11일
숙소 앞에 예쁜 선홍색 꽃이 있다.
저 빨간 꽃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꽃이 아니라 잎이란다.
잎 가운데 초라한 꽃이 있는데 그 꽃이 필때쯤 둘레의 잎들이 저렇게 빨갛게 변한단다.
빛나는 건 꽃이 아니라 잎이다.
더불어 빛나는 아름다움.
눈부신 조연.
꽃잎같은 인생.
빅토리아 station 에 가서 기차표를 끊었다. 피난 시절 우리나라 서울역의 풍경이 그랬을까...
운동장 만한 광장에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눕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얘기를 하기도 한다.
사람들마다 짐이 한 짐이다.
나도 영어를 못하는데다가 인도식의 영어 발음이 하도 특이하여서 한참을 고생하여 차표를 끊고
영화 한편을 봤다. 느끼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촌쓰런 뮤직 비됴에 액션과 로맨스를 짬뽕한
코믹물정도라고 할까... 네시간 짜리 영화였는데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다. 춤이 하도 인상적
이어서 좀 따라해 봤는데 영~ 꽝이다. --; (나중에 알고 보니 인도영화가 다 그런 내용이란다.
시간도 아무리 짧아야 세시간...헉...암튼 인도사람들은 자기네 영화를 너무 너무 사랑한단다.)
저녁에 클리포드 마켓 (남대문 시장 마냥 큰 시장이다.) 과 인도식 결혼식장엘 갔었다.
아주아주 부유한 사람인거 같았다. 밴드도 부르고 음식도 장난아니었다. 외국인이어서 그랬는지
구경하고 음식 먹는 걸 막진 않았다. 음식이 하도 많아서 이거 싸들고 나가 밖에 있는 사람들
좀 나눠 주고 싶었다.
아라비아해의 일몰을 보고 있다.
어디서나 그렇겠지만 이곳의 일몰과 일출 역시 아름답다. 아련하다.
세상 어느 곳이라고 슬픔, 절망, 기쁨이 없겠는가.
어느 곳이라고 해가 뜨고 지지 않겠는가.
개들이 한가하게 차길 가운데 주저 앉아 있고 차가 올때만 느릿 느릿 비켜 선다.
집 없는 아이들과 사람들은 다리가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면
박시시....를 부르며 따라온다.
그 표정이 순간 일그러진다. 양 미간 사이에 깊게 패이는 주름엔 묘한 원망감이 서려있다.
내가 이렇게 사는 데에는 당신들의 책임도 있어요...
항변하는 듯 하다.
온통 거지다. 어디가나...
여기에서도 난 가진 것 없고 채울 것 없는 거지다.
이곳엔 게이가 많다. 그 끝도 없는 수행과 고행에 방해가 된다고 성기를 잘라서 중성이
되어버린 인도 최고의 신인 시바의 영향이란다.
그들은 그들을 업신여기지도 그렇다고 딱히 우대하지도 않는다.
해질 무렵 어떤 남자가 다리 난간에 기대 한참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 내게 나즈막히
노래를 불러줬다. 가족들 얘기를 했으며 좀전에 결혼한 그 부자 청년의 얘기를 했다.
난 바람과 바다를 즐기고 있다고 했고, 그는 마이클 잭슨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면서... 무슨 얘긴지 몰라서 멍한 표정을 지으니,
결혼은 했냐고 물었다. 그리곤 한참뒤 어디에 묶냐고 했고 망설이며, 자기가 들어가도 되냐고
했다... 내가 너무 우울해 보인다고 자기가 happy 하게 해주겠다면서.
( happy 는 게이들이 많이 쓰는 은어란다.)
오래 얘기를 나눴던 그 남자를 어색하게 떼어 놓고 무거운 발길을 숙소로 돌렸다.
마음속에도 해가 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