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10.04.18 13: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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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매이는 데가 있어야

 

    항구도시 부산에는 전국에서 제일큰 공동어시장이 있다. 화물 컨테이너가 드나드는 북항과는 달리 고기잡이배들만 드나드는 남항에 위치하고 있어서 내가 시무했던 교회의 전도구역이 되었다. 공동 어시장을 책임 맡은 회장은 그 지역에서 수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수산업에 직접 종사하지 않고 중앙에서 낙하산식으로 명령을 받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 현장과의 마찰도 종종 생기곤 한다.

 

   언젠가는 해군 제독 출신의 장로님이 그곳에 회장으로 부임하여 내가 시무하던 교회에 출석을 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오랫동안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평신도처럼 예배만 참석하고 말없이 돌아가곤 했다. 한참 뒤에야 그분이 공동어시장 회장님이라는 것과 울의 어느 교회 장로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본교 장로님들과 자리도 같이하고 직장 선교단체의 고문 자격으로 전도하는 일에 참여시키기도 했는데 그분은 겸손하게 잘 따라주었다. 그 장로님은 군인교회에서 임직을 받았기 때문에 교파 관념이나 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냥 주일예배에 출석하여 설교에 은혜 받고 자기는 연보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어느 날 그분이 내게 찾아와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자기는 지금까지 교회에 매이지 않는 것이 자유롭고 좋은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고 했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던지 또는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날 때 신앙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고도 했다. 어려울 때마다 자기를 붙잡아 주는 목회자가 있고, 자기가 부담을 가지고 헌신해야 될 교회가 있을 때 흔들림이 없이 자기 위치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장로님이 교회의 분위기와 목회적 비전을 공유하고 거기 동참하면서부터 보람과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는 고백을 들었다. 역시 사람은 어디에나 매이는 데가 있어야 된다고 본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조직의 일원으로서 자기의 역할을 감당할 때 신분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이 확고해지기 때문이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