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10.05.08 13: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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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사랑(2)

 

  얼마 전 TV에 방영된 어느 시골 노인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 87세의 노인 부부는 외진 시골 마을에 옛날식 집을 짓고 아궁이에 불을 때며 전형적인 산골생활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열일곱 살에 시집을 와서 70년 가까이 정말‘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해로(偕老)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동안 7남매의 자녀를 키워 출가시켰고 거기서 난 손자와 증손까지 30명이 넘는다고 했다. 모두 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더러는 해외에서 사는 식구도 있다고 한다. 두 노인의 얼굴에는 세월의 연륜만큼 주름이 잡혀 있었지만 조금도 꾸밈이 없는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모습이었다. 결혼한 이후에는 시집살이와 많은 형제들을 돌보며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여러 명의 자식들을 낳아 기르며 공부시키느라 편한 날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지난날 우리나라 가난한 농촌의 생활이 다 그랬지만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부지런히 노력하며 성실하게 자기의 자리를 지켜왔기에 오늘의 보람과 즐거움에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현장에 나간 방송국 리포터가 그 연세가 되도록 부부간에 싫증을 느끼거나 불평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된 비결이 무엇일까 관심 있게 추적하는 것 같았다. 요즘 보통 사람들이 내세우는 문화나 환경 또는 여유 있는 생활이나 취미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이들에게서 어떤 것이 행복의 포인트가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오는 동안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이나 행동의 표현을 어떤 때 하시느냐?”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은 적도 본적도 없다고 했다. 지금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여보! 사랑해요!” 하면서 껴안아 드리라고 권했으나 두 분 다 민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 앞에서 쑥스러워하기만 했다.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사랑한다.’는 말을 하거나 애정표현의 행동을 하지 않고도 어떻게 그 허구한 날 실증을 모르고 살아왔을까? 카메라 앞에서 마주쳐다보는 노부부의 눈빛이 무언의 대답을 주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쌓여진 신뢰와 표현은 하지 못해도 깊어진 진한 애정이 흔들림 없는 행복의 기초였다고 ......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