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는 것도 은사라는데......
부산에 있을 때는 왜 그렇게 밥 먹으러 나가야 될 일이 많았는지 귀찮을 정도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즐거운 비명이었던 것 같다. 그 교회 교인들은 집안의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 생일까지 챙기면서 꼭 목사를 초청하여 예배를 드리고 식탁에서 간곡한 기도를 하게했다. 대부분 가족이 다 모이는 저녁 시간을 선호하지만 더러는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기도 하고 그것도 저것도 시간이 맞지 않으면 출근시간이나 등교시간에 늦지 않을 이른 아침으로 정하게 된다. 나는 거의 밤늦게 자고 새벽시간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 남의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힘들게 여겨지는 사람이다. 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일 년에 한두 차례 담임목사를 초청하여 대접할 수 있는 기회라고 정성껏 상을 차리는데 그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맛있게 잘 먹어야 된다는 부담을 안게 된다.
.
그렇지만 나는 식성이 까다롭지는 않으나 많이 먹지는 못한다. 매번 게으른 사람 기어 올라가기도 어려울 만큼 높이 쌓아 올린 밥그릇을 다 비울 자신은 없고 겨우 꼭대기 부분 몇 숟갈만 덜어서 미역국에 말아 먹는 정도다. 당연히 주인은 안절부절 하며 식성에 안 맞느냐? 반찬에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느냐? 신경을 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항상 같이 다니는 나이 많은 장로님이 한번은 “목사님 잘 먹는 것도 은사라는 것 아십니까?”하고 일침을 놓았다. 많이 먹는 것이 은사(恩賜)야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분명 은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초청받아 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솔직히 부담도 가지곤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울에 온 후로 그런 부담이 별로 없다. 몇 년이 지나도 누구 집에서 생일을 지냈다는 말을 잘 못 듣는다. 내가 미리 알아서 생일 카드를 적어 보낼 때와 또 주일 강단에 생일감사 헌금자의 이름이 오르는 것을 보고 아는 정도다. 사실 우리교인의 수준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매너가 있다. 적어도 음식으로 부담을 주거나 억지로 꾸역꾸역 먹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점은 안심할 수 있어서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