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것도 기적이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박승훈 씨(51)는 현민(25) 현진(19)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두 형제는 ‘근이영양증’이라는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온 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지면서 폐 근육까지 마비돼 질식하듯 죽어가는 병이다. 20대 초반을 넘기기가 어렵다고 알려진 병이기 때문에 이들 형제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이 환자들의 평균 수명을 넘긴 현민 군은 폐의 상당 부분이 굳어져서 하루 14시간을 산소 호흡기에 의존한다. 증세가 좀 덜한 현진군은 6년 전 형의 모습이다. 오랜 세월 방안에서 누워만 있는 현민 군이 바다 냄새를 맡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여 이들 세식구가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지난달 24일 아버지와 두 아들은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첫 행선지인 서귀포 근처 섭지코지에 갔을 때 작은 아들 현진군은 휠체어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너무나 즐거워했다. 연신 휠체어에 누워만 있던 현민 군은 아버지의 어깨에 얹혀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호흡기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숨이 넘어 가도록 기침을 했다. 다시 휠체어에 누운 현민 군은 즐거워 하는 동생을 바라보면서 “나도 몇 년 전에는 저렇게 돌아 다녔는데....... 저 녀석도 곧 나처럼 될 것 같아서 그게 참 불쌍하다” 고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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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박승훈 씨는 14년 전 아내가 병든 자식을 버려두고 집을 나간 뒤 아들들의 간병을 위해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었다. 그는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비 100만원을 가지고 힘들게 살아가면서 그동안 수없이 자살의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주변에서 두 아들을 장애인 시설로 보내고 새장가 들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자신은 병든 자식을 떼어 보내고 혼자서 못 살 것 같았다고 말한다. 식사를 마치고 전용매트에 두 아들을 차례로 눕힌 다음 아버지는 작은 아들에게 호흡조절기를 물려놓고 숨쉬기 훈련을 시켰다. 힘이 들어도 이 연습을 열심히 해야 형처럼 되는 날을 늦출 수 있다며 아들을 다잡았다. 동생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면, 보고 있던 형이 “나처럼 되고 싶냐”고 화를 내곤 한다. 보통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숨쉬기가 이들에게는 생사를 걸어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인 것이다. 그렇게 애를 써 봐도 결국 죽음의 시간을 미루어 가는 것 뿐인데 그래도 아버지의 마음에는 그것이 모두 자기의 죄인 것처럼 쓰린 가슴을 두들기곤 한다. (9월1일자 모 일간지에 게제 된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