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의 나팔 ②
여러해 전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라는 영화가 화제를 뿌린 적이 있었다.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한 이 영화는 교회와 기독교를 소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서 ‘선교영화’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전편에 흐르는 작가의 의도는 기독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를 폄하하고 복음의 거부감을 유발하는 반기독교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다.
경남 지역의 전통 있는 소도시 밀양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그 고장에 있는 어느 교회를 등장시켜 발광하는 듯한 예배 장면과 광신도적인 행태를 부각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혐오감을 자아내게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기도 한다. 주인공의 유괴 당한 아들이 하필이면 그가 가까이 하고 신뢰했던 교회의 장로였다는 것과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여전히 교회의 지도자로, 구역원들을 돌보는 선한 청지기로 행세를 하는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아들을 유괴당한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고 설교에 은혜를 받아서 원수를 용서해주어야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교도소로 유괴범을 찾아갔을 때다. 인간적으로 엄청 큰 갈등과 번민을 거듭하다가 어렵사리 결심을 하고 찾아갔는데 당사자인 유괴범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 앞에서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뻔뻔스럽게도 자기는 이미 하나님께 다 용서받았다는 말을 했다. 어린이를 유괴하여 살인을 한 사람이 교회의 장로라는 것과 그동안 자기로 인하여 죽은 아이와 그 어머니가 당한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께 사죄와 용서를 받았다고 하며 편안하게 지내는 모습이 기독교의 사랑이요 은혜라는 말인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런 식의 자의적이고 위선적인 축복관을 가지고 있어서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 여기에도 파수꾼을 자임하고 정확하게 나팔 소리를 내어야 되는 목회자들의 무능과 한계를 엿보게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교회의 중직자요 남들 앞에서 솔선수범해야 되는 사람들이 복음의 빛을 가리고 전도의 문을 막는데도, 이를 방관하거나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가 ‘짓지 못하는 벙어리 개’라고 한 말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