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의 나팔 ③
1980년 봄 내가 경남 창원에서 시무하던 교회를 사임하고 인천에 있는 어느 교회에 부임했다. 고신 측 교단 소속인 그 교회는, 사재를 들여서 교회를 설립한 장로님이 비전 있고 유능한 목회자를 초빙하여 이상적인 교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찬 희망을 가지고 나를 선택했다고 했다.
내가 그 교회 부임하고 며칠 후 서울에서 노회의 지도급 목사님 두 분이 축하 인사차 찾아 오셨다. 식사 시간에 한 분이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손상률목사를 이 교회 부임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경남에서 사역했던 손목사는 완전히 죽어지고 이제부터 서울의 손목사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했다. 기도를 마치자마자 내가 그분을 보고 ‘경남의 하나님과 서울의 하나님이 다르단 말인가? 같은 신학을 공부한 선배가 새로 부임한 목사를 두고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하느냐?’고 거칠게 항의를 했다. 그분은 웃으면서 대꾸하기를 ‘그럴테지. 그러나 오늘 내가 기도한 말 명심해라. 지금은 몰라도 세월이 지나면서 이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
나는 그 교회에서 일 년을 못 채우고 봇짐을 쌌다. 그때까지 그 선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참으로 힘든 과정을 많이 겪었고 결국 고비를 넘기지 못한 것이다. 이듬해 봄 맨손으로 나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서울의 영동에서 여섯 명의 대가족을 데리고 개척교회를 시작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다름없이 그 선배의 기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제나 어디서나 목사는 목사여야 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좋지 못한 결과가 눈에 보이더라도 목사는 목사로서 소임을 다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듣든지 안 듣든지 파수꾼은 정확한 나팔을 불어야 되는 책임이 있다. 그 생각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나팔소리가 무디어져가고 정확도도 떨어지는 것만 같아서 서글픈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한다고 하면서도 모르는 사이 사람의 귀에 더 익숙해져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