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잉크 칠하기
나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이듬해부터 매주일 주보를 인쇄소에 맡겨 활자화했는데 처음부터 주보 3면에는 당일 설교를 요약하여 게재하였다. 1980년 봄 사역지를 인천으로 옮겨 온 다음 똑같은 스타일의 주보 원고를 만들어 시내에서 이름이 난 한 인쇄소를 찾아갔다. 그 인쇄소는 여러 교회의 주보를 거의 전담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당시 숭의감리교회에 출석하는 권사 한 분을 만났다. 이분은 모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석학인데 자기가 활자를 문선하고 교정까지 직접 보면서 모든 주보를 하나하나 읽고 챙기곤 하였다. 한번은 나를 만나자고 하더니 자기가 지금까지 보아온 설교문 중에서 이렇게 성경 중심으로 요약해서 체계 있게 기록한 내용을 처음 보았다고 하더니 앞으로는 설교전문을 실리도록 해보라고 권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매주일 설교전문을 주보에 싣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200자 원고지 30매 정도로 기록하다가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부터는 A4 용지 3매 분량의 원고를 매주일 작성해왔다.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한자 한자 모두 활자를 뽑아서 맞춰야하기 때문에 인쇄소에서는 작업량이 많아지고 주보가 한꺼번에 몰리는 날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나의 원고는 언제나 목요일 전에 보내주어야 했다. 그때부터 30년 세월을 한주일도 거르지 않고 이 작업을 해왔다. 2006년 9월부터 설교의 지면을 줄이고 거기다 <겨자씨>라는 목회 칼럼을 실리기 시작했다. 학자도 아니고 문필가도 아닌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해왔는지 지내놓고 보니 아득한 생각이 든다. 한국의 목회 현장은 밤과 낮이 따로 없고 요일의 구분도 없이 쫒기고 짓눌리는 상황인데 잠시라도 마음의 여유나 정서적인 안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지금까지 해온 것이다.
이 주보도 오늘로서 끝을 맺기로 했다. 새해부터는 통상 교회들의 주보와 비슷하게 제작하기로 계획되어있다. 매주일 설교 준비에 쫒기면서 많은 양의 원고를 작성하느라 참 힘들게 살았는데 이제는 한결 부담을 덜게 될 것 같다. 그렇지만 목사인 나에게 흔히 말하는 ‘종이에 잉크 칠하기’로 보낸 세월이 보람과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