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교학 교수님이 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영혼의 잘됨, 범사의 형통, 몸의 강건이라고 하는 삼중 구원이 목사님 교회의 주 메시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희생 정신이나 산상보훈의 복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삼중 구원이 주 이데올로기가 될 때 기독교는 이기적이고 교회 중심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따라서 사회적 성숙을 이루지 못한 채 소아마비를 앓는 거인 같은 괴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즉 뿌리가 없는 나무는 그 윗부분이 아무리 이상적이고 찬란해도 곧 말라 죽고 마는 것처럼, 기독교 신앙에서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만남을 통한 가장 기초적이고도 근원적인 복을 받지 못하면 희생 정신을 나타낼 힘도, 사회적인 성숙을 이룩할 마음의 여유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중 구원이란 기독교 신앙의 전부가 아닙니다. 온전한 신앙으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변화받고 치료받고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이웃을 도와 주고 성숙한 신앙 생활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기초가 다져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