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01.28 14: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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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를 맞추는 일

오래전 내가 전도사 시절에 명절이나 방학 때가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에 가면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접근하기를 무서워했다. 큰 아이가 네 살쯤 되었을 때 다시는 할아버지 댁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인즉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가 앉기만 해도 '네 이놈!' 서기만 해도 '네 이놈!'하며 꼼짝도 못하게 하더라는 것이다. 그때 어른들의 눈에는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위태롭게 생각되어 마냥 단속하는데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살았다.

나이든 사람들이 간혹 젊은이들에게서 격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서운해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나도 그중에 하나가 되겠지만 이런 일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어 눈높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줄 장난감을 살 때도 만화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을 알고 그들이 조작하는 기구들이 어떤 것인가 공부를 해야 한다. 몇 년 전 미국에 가서 아이들 선물을 사기 위해 디즈니랜드에 들렸더니 거기 진열된 그 많은 상품들은 그 당시 유행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주인공이거나 그들의 캐릭터로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니모”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금붕어처럼 생긴 물고기 인형을 사다주었더니 이 아이들이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할머니, 할아버지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그 선물을 받고부터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희들과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쪽에서 그들의 사고와 가치의 기준을 따르려고 애를 썼고 그것이 적중했다는 것이다.

지금 일본에 가 있는 외손주 녀석들은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즐기거나 저희가 좋아하는 비디오 테잎을 사다놓고 그것을 자주 보았다. 한번은 얘들이 “할아버지 이 영화 참 재미있어요. 우리 같이 봐요”하고 권하는 바람에 함께 보게 되었는데 오래전에 유행한“슈렉”이라는 어린이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도 저희들처럼 소리 내어 웃기도하고 손뼉도 같이 치고, 주인공 슈렉과 통키라는 망아지 흉내도 내면서 영화에 흠뻑 빠져보았다. 그 일이 있고부터는 아이들과 슈렉 이야기로 대화를 하게 되고 그 비슷한 소재를 들고 나오면 그 순간 격의 없는 친구로 변하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도 어른과 아이들의 간격을 좁히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에는 절기 때나 주일학교의 헌신예배가 있을 때 으레 어른들 중심의 예배를 드리곤 하였다. 기도를 하는 장로님이나 설교를 하는 목사가 아무리 어린이를 의식하며 쉬운 말로 하더라도 아이들은 몸부림을 치게 된다. 이런 경우 포커스가 어른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른의 성향에 따르기란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교회에서는 각급 주일학교가 주관하는 헌신예배나 여러 가지 축제 행사들을 가지면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가는 예배 형태로 바뀌어졌다. 주일학교 부장이 인도를 하고 어린이들이 기도와 찬양을 하고 담당교역자가 설교를 하는데 그 형식 또한 기존 예배의 격식을 뛰어넘고 있다. 찬양을 할 때도 드럼 같은 시끄러운 악기가 동원되고 손뼉을 쳤다가 일어섰다가 손을 들었다가 요란한 몸동작이 병행되는 것이다.

옛날처럼 눈감고 앉아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설교 듣는 식의 예배가 아니라 찬양과 워십과 드라마로 이어지는 신세대의 예배는 다양한 장르가 총동원되는 종합예술이요 축제 형태가 되어 버렸다. 나이든 어른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거북해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신세대의 사고와 예배의 문화라는 측면에서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공동체에 있어서 구성원 간에 간극이 좁혀지고 화해의 장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눈높이를 조정하는 노력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