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02.04 14: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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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고치기

 

 한번 잘못된 습관이나 버릇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교육적으로는 스스로 생각하여 고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안 될 때는  강제적으로라도 고쳐야 되는 특단의 방법도 필요할 때가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지만 오늘날의 신세대에게는 그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부모들의 잘못된 자식 교육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젊은이들이 부모를 홀대하는 것을 빗대어 풍자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서울에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가운데 외우기 어려운 이름을 붙이거나, 단지 내에 있는 아파트의 동수를 찾기 어렵도록 배열해 놓은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유인즉 시골에 사는 부모들이 자식 집에 찾아올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서울의 아들네 집에 올라온 어느 노인이 며칠 지내는 동안 며느리의 등살에 주눅이 들어 더 이상 있지 못하고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 노인이 가면서 아들 앞으로 편지를 써 놓았는데 그 내용인즉 “넷째야! 잘 있거라. 일곱째는 떠나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노인이 자식 집에 와서 지내는 동안 가족의 비중에 따라 나름대로 서열을 매긴 것이다. 첫째는 당연히 며느리이고, 둘째는 손자들이고, 셋째는 며느리의 친정 엄마이고, 자기 아들은 넷째였다. 다섯째는 가정부, 여섯째는 강아지, 그리고 시아버지인 자기는 겨우 일곱째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위에 두 가지는 모두 나이 많은 부모가 시대를 탓하며 체념해 버린 경우이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도 있다.

경남의 어느 지방에 홀아비로 사는 노인이 있었다. 아들과 자부가 안방을 쓰고 아버지는 뒷방에 거처하도록 해 놓고 좋은 것이 생기거나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저희들끼리만 먹을 뿐 아버지에게는 기별도 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일주일이 멀다하고 아버지만 남겨둔 채 저희 식구들만 나가서 외식을 하고 오는데 그때마다 갈비를 뜯고 뼈다귀를 가지고 와서 개집 앞에 쏟아놓는 것이다.

괘씸하게 여긴 아버지가 단단히 벼르다가 결국 버릇을 고치기로 결심하였다. 아들네 식구가 외식을 나갔다가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올 때 노인은 개를 자기 방에 가두어 놓고 자기가 개집에 들어 앉아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들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개집 앞으로 다가가서 개 이름을 부르며 소 뼈다귀를 쏟아 놓았다. 당연히 꼬리를 치며 반갑게 나와야 될 개가 나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개집 안을 들여다보는데 안에서 아버지가 “멍~멍!”하고 개 소리를 내었다. 놀란 아들이 “아니! 아버지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식구들 알기 전에 빨리 나오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절대로 못 나간다. 너희들이 나를 개만도 못하게 취급했으니 지금부터 나도 개 팔자 만큼 늘어져 봐야겠다”고 하며 버티는 것이었다.

낌새를 챈 며느리가 다가오더니 돈 십 만원을 꺼내 보이며 “아버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이 돈 가지고 내일 친구들과 식사 하세요”라고 했다. 아버지는 이때다 싶어 “고작 십 만원! 내가 그걸 받고 나갈 것 같으냐?”고 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결국 며느리와 시아버지 사이에 몇 차례 흥정이 오고간 끝에 백만 원을 받고 타협을 보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런 일은 재발되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