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07.08 1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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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약이라더니(07. 7. 8)

 

러시아의 작가 푸쉬킨(A. Pushkin)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는 감       성이 풍부한 시기의 사람들에게 상당한 감동과 여운을 남겨 주기도 한다.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들을 참고 견디면 /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훗날 참으로 소중한 것이 되나니….』

구약시대 고난의 삶을 통하여 희망적인 미래를 열어나간 다윗의 시편 가운데 이와 비슷한 뜻으로 노래 한 것이 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고 하였다(시편 30:4-5)』

고난과 슬픔의 날들, 그리고 울음과 함께 지새우는 힘겨운 밤의 정경, 이런 것은 우리로 하여금 힘들게 하고 때로는 깊은 자괴감과 절망을 안겨 주기도 한다. 아무리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고난이 극심하여 이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내일이란 단어는 한갓 사치스러운 수식어에 불가할 것이며 그 어떤 꿈 이야기도 부질없는 환상처럼 들리게 될 것이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결국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픈 추억들을 잊어버리거나 희석시키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정말 그 당시 같으면 하루도 못 버티고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억지로라도 시간을 축내면서 세월을 통과 하다 보면 상처의 부위도 서서히 아물게 되고, 새로운 상황 변화에 따라 악이 선으로 바뀌어 지는 것을 경험 할 수도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삶의 철학이 있기 때문에 옛 어른 들의 말 가운데는 ‘젊은 시절의 고생은 비싼 값을 주고도 사야 된다’고 하였는지 모른다.

내가 28년 전 창원에서 겪었던 교통사고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지워지거나 잊혀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다들 ‘세월이 약’ 이라고 하지만 그때의 악몽 같은 상황과 그날 그 일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사람의 남은 가족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신음하던 어린 학생들의 그 고통스러웠던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 가슴앓이를 하곤 한다. 그래도 한편으로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뜻있게 새겨지는 것은 비록 잊혀 지지는 않았지만 그 고통 이후에 체험하게 되는 하나님의 위로를 보았기 때문이다. 한해 두해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로 발전도 하고 변화도 이뤄 내었지만 환난을 겪었던 그 교회는 경남지역에서 대표적이라 할 만큼 큰 교회로 성장해 있다. 그때 사고를 당했던 학생들은 어느덧 40대의 장년이 되었고 대부분 교회 생활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실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기 위해서 반드시 고난을 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꼭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께서 신뢰하는 사람, 또는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인 경우 고난을 통하여 그릇을 키우고, 연단의 과정을 거쳐서 큰 인물이 되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믿는다. 상당한 세월이 지나고, 세상살이의 경험이 많아지면서 차곡차곡 쌓여져 가는 축복의    분량이 지난날의 고난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커져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진리야 말로 신실한 언약임에 틀림이 없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