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8.07.06 18:56:59
1983

연민(憐憫)이라는 것


  며칠 전 월드비전(World Vision) 서울지회 관계자들과 함께 개성을 다녀왔다. 임진강 역에서 셔틀버스로 남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하여 발권수속을 마친 다음 오전 9시경 출발했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중간에 있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한 후 다시 입경 수속을 밟은 후 개성으로 들어갔다. 여권만 제시하지 않았을 뿐 외국에 나가고 들어올 때 출입국 수속을 하는 것과 같은 절차를 밟아야 했다.

  개성은 태조 왕건에 의하여 세워진 고려의 도읍지로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외국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고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낸 유서 깊은 고장이다. 지금은 옛날의 그 명성이나 자랑스러운 문화의 자취는 찾아 볼 수 없었고 곳곳에 세워놓은 수령과 지도자동지의 이름이 새겨진 선전문구와 선군정치의 구호들이 붉은 글씨들로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현대아산에서 만든 개성관광 코스를 따라 황진이 설화가 있는 박연폭포와 충절의 상징인 선죽교(善竹橋)와 숭양서원을 보고 마지막으로 고려 박물관에 들러서 진열된 유물들을 살펴보았다.

  버스로 가고 오는 거리에서 차와 사람을 보기가 어려웠고 산에는 나무가 없었으며 농사도 옥수수를 제외하고는 다른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개성시내를 지나오는 동안에도 간혹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과 줄지어 걸어가는 학생들의 모습 말고는 사람구경하기도 어려웠다. 도시에는 상가도 없고 가게도 눈에 띄지 않아서 주민들의 경제 활동이 거의 없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난하고 비참한 삶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았으며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얼굴이나 생동감이 없는 도시의 모습을 보는 동안 나는 씁쓸하기 그지없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과연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여 정치, 외교, 군사와 같은 현안을 논하고, 국제사회에서 그들과 힘겨루기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나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 또는 장래의 희망, 그곳 사람들의 삶의 질 등 어느 것 하나도 그들의 현실에서는 요원한 이야기이며 사치스러운 수사처럼 여겨졌다. 실시간대로 변하고 발전하는 바깥 세계와 담을 쌓아놓고, 그러고도 동족에게 적개심을 불태우는 그들에게 측은한 감정과 연민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