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2)
60년대 초 우리 동네에 서양선교사가 왔다. 당시 부산에 있는 축복산 고아원에서 사역을 하며 경남 지역을 대상으로 순회전도를 하던 코넬슨(Kornelson)선교사라는 분이다. 그때는 육지에서 거제도로 연결된 육교가 없었는데도 지프차를 타고 온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비포장 자갈길이긴 하지만 신작로라는 것이 있어서 마을 입구까지는 차가 들어올 수 있었다. 시골에 전기가 없던 때인지라 차에 발전기를 싣고 다니면서 영사기를 돌려 활동사진도 틀어주고, 환등기를 이용하여 시청각자료를 보여주면서 열심히 전도를 하곤 하였다. 저녁에 마을 뒷동산에 훤하게 전등을 켜놓고 확성기로 전도강연을 하는데, 그때는 구경거리가 없는 시기였기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동네사람은 거의 다 모여들었다. 특히 서양코쟁이가 와서 우리말로 연설을 한다는 것만 해도 호기심을 자극할만했다. 띄엄띄엄 서툰 우리말을 몇 마디씩 했지만 대부분 설교는 통역을 세우긴 했어도 그 뜻이 제대로 잘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도 전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외국인의 서툰 우리말 설교가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의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있다. 그분이 계란 하나를 손에 들고 큰 소리로 “여러분! 이게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앞에 앉은 아이들이 “달걀요!”하고 대답했다. “맞아요, 달걀 맞아요!”하더니 또 한손에 망치를 치켜들면서 “이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또 앞에 있던 아이들이 “망치 요!”하고 대답했다. 그다음에는 그 망치를 달걀 쪽으로 겨누면서 “이렇게 내려치면 달걀은 어떻게 되지요?”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깨져요!”하고 소리쳤다. 그는 또 가방 속에서 커다란 깡통 하나를 꺼내더니 “이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깡통요!”하고 대답했다. 그다음은 탁자위에다 계란을 놓고 그 위에 깡통을 덮어씌우더니 망치를 치켜들고 깡통을 내려쳤다. 깡통의 모서리가 찌그러들게 한참 내려친 다음 “이렇게 망치로 내려 쳤지만 달걀이 깨어지지 않았네요” 하며 계란을 들어 보였다. 아이들은 “깡통 때문요!” 하고 대답했다. 선교사님은 “그렇지요! 깡통 때문이지요!” 하고는 차분히 설명을 해 주었다. 즉 계란은 범죄한 우리들이고, 망치는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깡통은 십자가에서 우리대신 벌을 받으신 예수님이라고 하면서 설교를 마쳤다. 나는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전도의 미련한 것이 구원을 이룬다는 말을 한 번 더 실감하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