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8.11.23 19: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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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 그림 하나

    경남 창원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철새 도래지로 잘 알려져 있는 주남저수지가 있다. 매년 10월에서 이듬해 봄까지 시베리아에서부터 남쪽의 따뜻한 기후를 찾아서 철새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그중에는 진객(珍客)으로 불리는 큰부리큰기러기, 청둥오리, 큰고니, 재두루미 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서 날아오는 수만 혹은 수십만의 새떼들의 집합소가 되어 마치 조류대회를 여는 것처럼 된다. 그 많은 철새떼가 하늘 멀리에서부터 V자 대형으로 날아오는 모습은 군인들의 질서정연한 행진을 방불케 하고, 그것들이 수면위로 새까맣게 앉았다 떴다 하며 군무(群舞)를 연출할 때는 지상최대의 쇼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호수의 남단에 아담한 카페 하나가 있다. 이름은 ‘호수에 그림하나’인데 카페를 경영하는 주인은 그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밀양에 살고 있다. 밀양은 전도연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밀양>(密陽)의 고장이다. 주인 부부는 대학 때부터 문학과 예술 방면에 남다른 취향을 가졌던 터라 이 작은 시골 동네에다 낭만적인 이름의 카페를 내고 그들만의 세계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 집의 음식은 그렇게 고급스럽거나 대단한 것이 없지만 넓은 호수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개발한 전통차를 마시고 있노라면 잊혀졌던 향수를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다. 내가 어느 때 그 근처 마금산 온천에 들렸다가 그곳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우리교회에서는 그 집 구경을 한 사람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권사님들과 일일 세미나를 가지면서 그 집 앞뜰의 호숫가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다. 마침 단감의 고장답게 들어가고 나오는 연도의 산기슭에 엄청 많은 감나무들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어 달린 단감을 보며 전형적인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사람의 일생이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모두가 무엇에 그리 쫓겨야 하는지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처절한 삶의 현장이다 보니 ‘호수에 그림 하나’처럼 마음의 여유와 생활의 리듬을 조절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