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시절의 추억
내가 부임하고 두 달쯤 지나서 그 가문의 어른 격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죽음의 현장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내가 아무런 지식도 없이 어떻게 임종 예배와 입관, 발인, 하관 예배를 인도하며 무사히 장례를 치렀는지 아찔한 생각이 든다. 아마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는 말은 그럴 때 적합한 것 같다. 한번은 예고도 없이 어떤 부인이 귀신들린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는 기도를 해 달라고 했다. 스무 살쯤 되는 청년이 흉기를 마구 휘두르며 야생마처럼 소리를 지르고 다니는데, 처음 눈이 마주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하는 공포증이 몰려왔다. 겉으로 태연한 척 아랫배에 힘을 주고, 그 청년의 머리를 꽉 누르며 큰소리로 기도를 했다. 뭐라고 기도를 했는지 몰라도 정신없이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하는 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 청년이 조용하게 기도에 호응하였다. 그 이후 그의 어머니는 일만 터지면 나에게 기도해 달라고 했고 그 청년은 나를 보는 순간 얌전한 양처럼 수그러들더니 뒤에는 잘 따르곤 하였다. 농사일에 지쳐 있어서 예배시간에 잠자는 사람이 많았는데 나는 예배당 바닥에 이불을 가져다 놓고 설교 중에도 “잘 테면 이불 위에서 자라!”고 소리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집사들 중에 새벽기도를 나오지 않으면 내가 그 집으로 가서 예배를 드릴 테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한번은 그래도 않나오는 집사 집에 마구 쳐들어가서 잠자고 있는 식구들을 깨워놓고 예배를 인도한 일도 있었다. 첫 열심도 대단했지만 겁도 없이 막무가내로 휘둘렀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 교인들은 내 말이라면 하나님 말씀처럼 두려워했고 거부감 없이 따라 주었다. 그때의 일들이 나에게는 철없던 초년시절의 무용담 같았고, 그분들은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하며 아련한 추억으로 떠올리며 행복해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