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여기에
여러 해 전 일본의 홋카이도(北海島)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일본 열도의 최북단에 있는 그곳에는 대설산(大雪山) 국립공원을 비롯하여 어디에나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 태고의 신비를 보는 것 같았다. 아직도 불과 연기를 내뿜는 화산이 있는가 하면,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수정 같은 호수의 낭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아사이 카와(旭川)에 있는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의 문학기념관을 방문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미우라 아야꼬(1927-1999)는 일본의 저명한 여류 작가로서 문단에 기여한 바가 지대한 사람이다. 그의 명성에 비해서 그 기념관은 초라하게 보였다. 2층으로 지어진 조그마한 건물 안에는 몇 개의 방으로 꾸며져 있는데, 그 방들에는 작가의 일대기를 소개한 자료와 또 연대별로 남긴 그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일찍이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국가의 방침에 따라 군국주의 사상을 가르쳤고, 패전 후 교직을 그만두었으나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죄책감에 마음고생을 했었다.
미우라 아야꼬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은 1964년 아사히(朝日)신문사가 상금 1천만 엔 으로 공모한 소설 부문에서 그의 작품 <빙점(氷点)>이 입선되고, 곧바로 베스트셀러로 각광을 받으면서부터였다. 그 이후에도 ‘주부 작가’라는 수식어와 함께 계속된 작품활동으로 많은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가 초등학교 교사였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눈이 하얗게 덮인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면의 교무실을 목표로 똑바로 걸어갔다. 교무실 입구에서서 뒤를 돌아 거기 남겨져 있는 발자국을 보는 순간 “아! 이게 내가 걸어온 길이구나!”하고 한숨을 내쉬었다고 했다. 정문에서부터 교무실까지 앞만 보고 똑바로 걷는다고 자신했건만 눈 위에 남겨 놓은 발자국은 그렇지 못했다. 이리 비뚤, 저리 비뚤, 제 멋대로 걸어온 자취가 마치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궤적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정신적 지도자로 자처하는 성직자라도 그를 따르는 후학들에게 이것이 바른 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작가는 <길은 여기에!>라는 자전적 에세이집에서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던 인간적인 고뇌를 진솔하게 표현하였다. 결국 그는 독자로 하여금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께 방향을 잡도록 이정표 노릇을 했던 것 같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