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만남과 좋은 기억
나이가 들어갈수록 옛날을 그리워하고 어렸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지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일 것이다. 우리 나라의 남자들은 대개 50대 이후가 되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어렸을 때 어머니 손에서 얻어먹은 것이고, 가장 좋은 친구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라고 한다. 여러 해 전부터 서울에 있는 고향친구 몇 사람과 어울려서 저녁 식사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나보다 나이가 한두 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지만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한 교회에서 자랐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다. 내가 서울에 온 후 수소문하여 서로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그 후로 일 년에 한두 차례씩 만나던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이 사람들은 나를 이름 있는 좋은 교회에서 훌륭하게 목회를 하는 목사인 줄 알고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고향친구가 좋은 것은 우선 아련한 옛날 일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흉허물 없이 지껄이고 웃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집에서는 어른이고 교회에서도 연륜이 있는 집사와 권사, 또는 장로들이지만 그런 직함은 내려놓고, 옛날의 아랫도리 벗고 같이 놀던 죽마고우(竹馬故友)의 동심으로 돌아가곤 한다. 나는 어렸을 때 골목대장 노릇도 했지만 여차 하면 눈에서 불꽃을 튕기며 개성 있는 행동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런데도 친구들은 나에게 별로 나쁜 기억이 없다고 한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했고 부지런했으며 정의감과 의협심이 투철해서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친구들을 살펴 주었다는 등 ......
가까운 친구일수록 서로 마음을 터놓고 편안하게 대해 주고 또 다른 사람 앞에서는 좋은 말로 덕담을 하는 것이 상식적인 모습이다. 그렇지만 세태가 각박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친한 사람일수록 경계를 하게 되고,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소리가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접할 수도 있고, 더러는 마음에도 없는 일을 본의 아니게 저지르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보편적인 삶의 패턴에서 본다면 남을 해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평범하게 자기를 관리해 온 것만으로도 부끄럽지 않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시대를 같이 겪어온 좋은 친구와의 좋은 만남은 그래서 더더욱 즐거움의 조건이 되는 것 같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또 푸근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으니 더욱 좋다고 여겨진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