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이기(利器), 인간의 한계
1960년대의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가들 중에서도 후진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그때 우리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달나라 별나라처럼 높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나라가 6.25때 우리를 구해 주었고, 또 계속해서 원조를 해 주었다. 더욱이 한국 교회는 그 나라에서 파송한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받았고 그들에게 신앙의 지도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흠모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 시기에 내가 신학대학교를 다녔는데, 학교 교수 가운데 미국 정통 장로교 소속으로 오랫동안 한국에서 사역해 온 한부선(韓富善, Bruce F. Hunt, 1903-1992) 선교사가 있었다. 그분이 모처럼 안식년으로 1년간 미국을 다녀와서 보고 느낀 것을 전해 주었다. 그분이 여러 해 만에 본 자기 나라의 발전상에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더라고 했다. 그분은 부친에 이어서 2대째 한국에서 사역을 하였는데 1903년 평양에서 출생한 후 11년간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기를 빼고 50년 이상 한국에서만 살았던 분이다. 그러다 보니 안식년으로 잠시 머물고 온 미국의 생활에 더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한 말이 이해가 될 만하다. 까마득할 정도로 높은 고층빌딩도 엘리베이터로 순식간에 올라가고 어마어마한 건물 안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도 모든 것이 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최첨단 시스템의 편리함에 놀랐다고 했다. 한편 이 대단한 기계와 설비 가운데 어느 한 곳에라도 이상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했다면 어찌될까 하는 마음에서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실 9.11 테러 사건 같은 대형사고 뿐 아니라 사소한 인간의 실수라도 모든 것을 마비시키는 대재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우리나라도 불과 몇 년 사이 발전의 속도에 가속도가 붙은 것 같다. 그렇지만 인간 두뇌와 기술이 만들어낸 문명은 언제든지 그 한계점을 드러내곤 한다. 금년 초 백여 년 만에 많은 폭설과 한파로 도시가 얼어붙었을 때, 수도 서울은 교통대란을 겪어야 했다. 도로가 빙판이 되면서 지하철에 인파가 몰려드는 등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 중요한 시기에 전동차가 지상 구간에서 고장이 나거나 멈춰서는 사태가 속출하였다. 이유인 즉 자동화된 전동차의 문 틈새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정확하고 편리하게 여겨졌던 시민의 발이 그 중요한 때는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과학문명의 총아로 모든 것이 편리하게만 여겨졌던 자동화 시스템이 때로는 애물단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문명의 이기가 원시 시대의 자연 상태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