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일간지에 ‘전투 조종사의 피는 푸를 것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80년대 초 F-4 팬텀기 조종사였던 예비역 공군 중령의 글인데 그분은 최근 전투기 사고로 순직한 후배 조종사들을 애도하면서 이런 글을 썼다. 그분이 조종사 시절 동기생이 비행훈련 중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새벽에 군복차림으로 순직한 동료의 부모를 찾아가 아들이 사고로 병원에 있으니 같이 가자고 차에 태워 가는데 말은 안해도 눈치를 챈 부모의 모습을 보며 숨이 막히더라고 했다. 영결식이 끝나고 나면 조종사들은 순직한 동료의 뜻을 받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맹훈련에 돌입하게 되는데 그때처럼 푸른 하늘이 원망스럽게 보일 때가 없었다고 한다. 그분은 영결식장에서 본 순직한 동료의 어린 아들을 기억하며 가슴 아픈 사연을 적어 놓았다. 그 까만 눈망울의 아이가 십수 년 뒤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군 사관학교에 입교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전투기 조종사가 된 것이다. 아버지의 동료들은 그 청년을 두고 ‘전투기 조종사의 피는 푸를 것이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피가 푸르지 않고서야 아버지를 앗아간 그 푸른 하늘로 다시 날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그 아들이 몇 년 전 야간 비행훈련을 하다가 서해 하늘에 몸을 묻고 말았다.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채 대전 국립묘역에 묻힌 아버지의 묘지에 합장되었다. 한 여자로서 남편과 아들을 모두 조국의 하늘에 바친 그의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할까.
아무리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된 조종사라도 뜨거운 가슴의 감성을 지닌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은 동료가 산화한 하늘이 낯설어 지기도 하고, 전쟁이라는 냉혹한 현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 슬픔의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근성이 있다. 순직한 조종사들을 애도하며 그의 동료들을 위로하느라 ‘푸른 색깔의 피’로 묘사한 그분의 글은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행복하다. 지켜야 할 푸른 하늘이 여전히 저기에 있다”는 말로 끝맺음을 했다. 그도 역시 푸른 피를 가진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가 보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