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알아보는 눈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봉림대군은 병자호란의 패전에 따라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8년 동안 심양(瀋陽)에서 억류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가 볼모에서 풀려나던 날, 청나라 황제인 세종이 왕자들의 노고를 위로한다 한답시고 크게 송별연을 베풀어 주었다. 그 자리에서 봉림대군은 뜻밖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세종이 봉림대군을 내실로 안내하여 황후를 만나게 해 주었다. 황후를 보는 순간 눈에 익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황후가 “저를 알아 보시겠습니까?”하고는 봉림대군과 얽힌 사연을 풀어 놓았다.
그는 원래 일본에서 왕실의 딸로 태어났는데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천하의 영웅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바다를 건너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먼저 조선에 상륙한 다음 머리를 깎은 여승으로 행세하면서 대궐 근처로 맴돌며 스쳐가는 사람들을 살피곤 하였다. 며칠이 지나도록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유독 봉림대군만 그를 눈여겨보고 대궐 안에 데려가 주었다. 그곳에 거처하며 한 달 동안 살펴본 결과 그는 작은 나라의 군주는 될 수 있으나 자기가 찾는 영웅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그냥 뛰쳐나왔다고 했다. 그 길로 대륙에 건너온 후 청 태종의 아들 왕자를 만나 태자빈이 되었고 지금은 황후가 되었다. 그가 하는 말에 “대군께서는 잠을 잘 때 항상 문고리를 잠그는 버릇이 있더군요. 적어도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이라면 철환이 빗발치는 살벌한 전쟁터에서도 태연자약할 수 있는 배포가 있어야 되는데, 평소에도 문을 잠그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두려움을 느낀다면 천하를 도모할 영웅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고 했다.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眼目)도 대단한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