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09.12.27 17:46:27
2256

 

이런 일도 있었다

 

-2009년을 보내면서-

 

 

 

“참 하나님도 여러 가지 하십니다!” 화요일 저녁 옥상에 올라가 나 혼자서 내뱉은 푸념이었다. 지금까지 후암교회 산상부흥회 하이라이트는 화요일 저녁에 있는 야외 바비큐 파티와 작년부터 도입된 ‘한여름 밤의 열린 음악회’였다. 아침부터 맑은 날씨에 왠지 순조로울 것 같아서 오늘 저녁 행사가 참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성악가 두 사람도 합세했고, 다른 교회에서 온 플롯, 색소폰 연주자도 참여했고, 우리교회 12인 색소폰 앙상블도 많이 향상되었고, 참 기대가 컸다.

 

오후 네 시부터 청년들이 지하 식당에 있는 식탁과 의자를 들어내어 세팅을 하고, 여러 사람들이 불판을 피우며 고기 구울 준비도 다 되었다. 정자 사이에다 특설 무대를 만들고 각종 악기와 조명시설까지 설치하고 있었다. 다섯 시부터 식사를 하도록 되어있는데, 그 직전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검은 구름만 걷히면 개일 것으로 기대했으나 비는 작심하고 내리는 것 같았다. 식사시간을 30분 늦춘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곧이어 모든 기구를 지하식당으로 옮긴다고 협조해 달라고 방송했다. 청년들이 온몸에 비를 맞으며 짐을 들어 날랐다. 음향기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하식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한사람도 불평 없이 식사를 잘 했다. 전에 같으면 미리 오는 비를 멎게 해 달라고 통성기도도 했을 법한데 아무도 그런 생각이나 불평이 없었다. 나부터 그랬다. 이유는 전날 저녁 워낙 큰일을 겪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야외파티가 취소되고 음악회가 실내로 옮겨온들 대수냐? 그런 마음이 이심전심이었을 것이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비가 그쳤다. 다시 짐을 들어내며 야외 예배와 음악회 준비를 재개했다. 나 혼자 옥상에 올라가 밑으로 내려다보면서 <참 가관도 아니구나.> 그리고 엊저녁 아이를 찾느라 모든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게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며 애절한 기도를 했던 그 자리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나님! 참, 골고루 하시네요. 꼭 이런 식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십니까? 내가 목회 초년병입니까? 내일모래 제대 말년인데 아직도 이렇게 길들이기를 해야 됩니까?> 대답은 <그래도 사랑하지 않느냐?>로 들렸다. 그런 것 같았다. 하나님의 심술 섞인 사랑! 이후로 나는 <잔인한 자비>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출처 : http://www.huam.org